Glenfarclas 105
[기존 블로그에서 이사 온 글]
오늘 그리고 다음 기록에 다루려고 하는 두가지 위스키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캐스크 스트랭스(cask strength)" 위스키라는 점이다.
위스키를 마시다보면 더 강렬한 풍미와 향을 찾게되는데 그런 순간에 필요한 위스키가 바로 캐스크 스트랭스 위스키다. 캐스크 스트랭스 위스키란, 숙성 과정 후 병입 과정에서 물이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채 숙성된 원액 자체를 병입하여 만든 위스키이다. 그래서 도수가 무척 높은 편이며, 향이나 풍미도 도수만큼이나 풍부하고 강렬하다. (보통의 위스키들은 병입을 할 때, 이 원액에 물을 섞어 원하는 도수의 위스키로 만든다.)
보통 이 캐스크 스트랭스를 줄여서 CS라고 부르는데, CS는 원액 그대로를 담은 만큼 보통 일반 위스키보다 가격이 좀 더 비싸다.
글렌파클라스 105는 이 CS를 세계 최초로 업계에 내놓은 위스키다. 글렌파클라스 105 CS를 마시면, 위스키가 잔을 흘러 입술에 닿는 순간 와인향을 흠뻑 느낄 수 있다. 셰리 캐스크에서 숙성을 시키는 글렌파클라스의 특징 덕분에 정말 진한 셰리 와인향이 물씬 나는데, 독한 알코올 도수가 이런 향을 배로 느껴지게 해주는 듯하다. 이 위스키도 달달함이 특징인데, 카라멜이나 꿀같은 달달함 보다는 포트와인에서 느꼈던 달콤한 향이 크게 느껴진다. 도수가 60도 정도로 정말 높은데도 불구하고 정작 마시면 셰리 와인의 향과 풍미가 알코올의 독한 향을 누르는 아주 신기한 맛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마셔본 위스키 중에 내 기준으로 셰리와인, 즉 포트와인의 향이 가장 많이 느껴지는 위스키는 토마틴 18, 글렌리벳 13년 그리고 이 글렌파클라스 105다. (앞으로 더 많은 위스키를 마시다보면 이 순위는 바뀌지 않을까@.@)
글렌파클라스는 다른 CS보다 가격이 저렴한 편이라 캐스크 스트랭스 위스키 치고는 흔히 볼 수 있고 마실 수 있다. (짧은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캐스크 스트랭스 라인업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바가 많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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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를 좋아하게 되기 전, 나는 독한 술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있었다. 나에게는 독한 술 = 소주 향의 극대화라고만 생각했었기 때문에 위스키를 포함한 데킬라, 보드카 등의 도수가 높은 술들은 찾아 마시지 않았다.
이랬던 내가 우연하게 좋은 공간에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술을 접할 기회를 얻어 위스키라는 새로운 관심사이자 취미를 얻게된 것은 무척 감사할 일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위스키들 중 하나가 캐스크 스트랭스라는 점은 아이러니하고도 재밌다.
내가 싫었던 것들도 다른 관점에서, 다르게 경험하면 좋아질 수 있고, 내가 좋았던 것들도 또 다른 시기에 다르게 경험하면 좋지 않을 수 있다.
싫었던 것도 다시 한번 생각하면 이해가 되고 좋아질 수 있는 것인데 분명한 것을 지향하는 성격 탓에, 또 빨리빨리에 익숙한 급한 성격 탓에 두번 봐야 그 가치를 알 수 있는 것들을 놓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싫어도 다시 한번, 미워도 다시 한번이 필요한 시기가 필요하다. 아마 지금쯤 그렇게 다시 많은 것들을 돌아봐야할 시점일도 모르겠다. 일도, 공부도, 사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