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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기로 Apr 15. 2021

스타트업 디자이너는 무슨 일을 할까?

이것저것 다한다는 풍문이 사실일까?

안녕하세요, 하기로입니다.


네, 사실입니다. 정말 이것저것 다합니다.

저는 10인 미만 규모에서도 일을 해 봤고, 약 열 명 규모였던 회사가 백여 명이 되는 과정을 경험해 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창업 멤버로서 또, 스타트업 하고 있네요. 지겹지도 않나 ㅎㅎㅎ


글을 쓰면서 지금까지 했던 일들을 쭉 떠올려보니까 진짜 별의별 일을 다 했더라고요. 마땅하게 할 사람이 없으니까 제가 그냥 하게 되었던 건데요. 저는 이것저것 다 하는 것을 나쁘게 보는 사람은 아닙니다. 디자인 외적인 곁다리 작업들이 저한테는 굉장히 잘 맞았고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비교적 오래 다녔던 회사들이 스타트업이었습니다.


그럼 스타트업의 디자이너는 무슨 일을 할까요? 100퍼센트 주관적인 경험담을 풀어보겠습니다.





업무 외적인

것들

10인 미만의 회사는 지출하는 리소스를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인사팀, 회계팀, 영업팀, cs팀이 따로 없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핵심 멤버는 대표, 디자이너, 개발자, 끗- 크게 이 세 파트가 북 치고 장구치고 하면서 나아가는 겁니다. 대표는 당연히 자기 회사니까 이것저것 다 관여를 해야 하고, 개발자는 워낙 업무량이 많은 직군이다 보니 개발만 하기에도 빡세요.


문제는 디자이너.

눈에 보이는 최종 아웃풋을 담당하는 직군이 디자이너라서 기획부터 개발까지 알아서 챙겨야 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디자인이 잘 나오려면 잘 된 기획과 잘 된 개발이 필수적이기 때문이죠. 끼인각이라고 해야 할까?


또 이 직군에 있는 사람들이 호기심도 많고 배우는 걸 좋아해서

"네 해보겠습니다"를 잘해요.

개발 같은 건 네, 해보겠습니다가 안되잖아요.


그러다 보니 이 부서, 저 부서의 일들이 점점 내 일이 되기 시작하죠.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별의별 일을 다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인사 & 경영 지원 업무]

-사무실 환경 개선

사무실 환경이 너무 구려서 스스로 사무실 개선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케이스예요. 자발적인 노동이었기 때문에 즐거웠으나 어느 날 문득, 탕비실에서 티 백을 가지런히 정리하면서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번쩍 들더군요. 당시 회사 내 제 별명은 탕비(실) 요정이었죠.


디자이너니까 미적인 건 내가 신경 쓰자,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으니까, 기업 브랜딩을 담당하고 있으니까. 사무실 입구의 가벽 페인트칠을 하며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앉아서 디자인하는 것보다 페인트칠하는 게 더 재밌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현타'는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디자인력 점점 퇴화. 사무실에 쓸 책상과 의자, 기타 가구들을 고르는 것, 업체 컨택 및 견적 내기, 프린트기가 고장 나면 제가 연락해서 고치기도 했고요.


-인사 업무

사원증을 만들어야 하는데 사원들 사진이 없으니 전 직원 스케줄을 체크한 후 한 명씩 촬영을 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때 카메라 사고, 조명 사고. 미니 스튜디오를 만들기도 했죠. 비슷한 작업으로 명함 만들기가 있었는데 어떤 직원이 입사했는지 바로바로 알 수 있었어요.


그렇다면 어디서 어디까지가 디자인 업무였을까요? 분명 내 업무 같으면서도 아닌 업무까지 담당하는 건 왜 때문일까요? R&R (역할과 책임 분담) 체계가 잘 잡힌 회사에서는 전 직원의 스케줄을 체크하는 것은 인사 부서가 하겠죠. 명함 작업에 필요한 개인 데이터를 받는 일도 인사팀에서 문서화하여 정해진 날짜에 발급하는 것을 시스템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다행히 회사가 커질수록 인력이 보충되면서 업무 롤과 시스템이 명확해질 수 있었어요.





[마케팅 업무]

-전단지를 직접 돌려본 적이 있어요.

전단지 제작을 했는데 아무도 돌릴 사람이 없는 거지. 답답해서 직접 집집마다 붙이고 다녔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전단지 돌린 알바 이력이 좀 있었거든요.


-시장 분석을 위한 현장 인터뷰

회사가 잘 되기 위해서는 이 정도 쯤이야.




[cs팀]

-직접 콜을 받는다.

대표님의 굳은 철학이었습니다. 전 직원이 현장의 소리를 직접 들어야 엣지있는 아이디어가 나온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전문적으로 고객 응대를 한 경험이 없다 보니 직원들의 앓는 소리가 굉장히 심했었죠. 자, 디자이너는 그렇다 치고 개발자가 콜 받는다고 상상해 보세요. 3회 정도 진행하고 폐지된 제도. 영업까지 뛰라고 하지 않아서 다행이었습니다. 의도는 좋았으나 cs나 영업팀에서 고객의 소리를 취합하여 프로덕트팀에게 월별 브리핑을 했으면 더 효율적이지 않았을까. 이제 와서 생각해 봅니다.







업무 관련된

것들

자, 여기서부터는 좀 더 디자인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스타트업에 입사하기로 결정했다면 어느 단계에 있는 스타트업인지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흔한 스타트업 투자 단계, 즉 규모는

0단계 - 아무것도 없음 / 정부 창업 지원 투자 (1억 규모)

1단계 - 엔젤 / 시드 투자 (10억 규모)

2단계 - 프리 a 투자 / 시리즈 a (50억 규모)

3단계 - 시리즈 b (100억 규모)

4단계 - 시리즈 c or m&a = 여기서부터는 누구나 알만한 기업이기에 대기업이라고 봐도 좋다

로 구분됩니다. 다시 말해 스타트업이라고 해서 다 같은 스타트업은 아니란 것이죠.


0단계에서 2단계는 위에 서술했듯이 디자인과 디자인 외적인 업무를 니 일 내 일 할 것 없이 주도적으로 가져가야 합니다.


스타트업 3단계부터 디자인 팀은 두 파트로 나뉩니다.

첫째, bx 파트.

둘째, ui/ux 파트.

다른 이름으로는 브랜드(서비스) 경험 디자인, 브랜딩 디자이너

유저 경험 디자인, 유저 인터페이스 디자인, 서비스 디자이너, 프로덕트 디자이너, gui 디자이너, ui 설계자 등등 멋진 변주들이 있습니다.


저는 주니어 시절 0~1단계 회사에서 브랜딩부터 ui, ux를 전반적으로 담당했기 때문에 넓고 얕은 업무 스펙트럼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 스타트업에 계신 0~2단계 3-4년 차 분들은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있을 것입니다.


먼저 브랜드 경험 디자인 = bx 파트부터 볼까요?

디자인 가이드라인은 행위의 근거이자 뿌리이고 모두의 칼퇴를 책임지는 핵심 키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디자이너는 브랜드 디자인 시스템을 확립하는 것부터 업무를 시작합니다. 이것을 확립하지 않고 디자인 업무를 급한 대로 받고 쳐내기 시작하잖아요? 그럼 집에 못 갑니다. 디자인을 하는 기준이 나에게도 없고 당신에게도 없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ui/ux 디자이너로 입사를 했을지언정 브랜딩 팀이 없거나 브랜드 디자인 가이드라인이 없다면 아마 여러분이 가장 처음으로 하게 될 업무가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업무일 것입니다. 대표를 설득해서라도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업무죠.


사설이 길어졌습니다만.

브랜딩은 다시 기업 브랜딩과 서비스 브랜딩으로 나뉩니다.


저는 그냥 다했습니다.

기업 브랜딩도 하고 페인트칠도 하고 서비스 브랜딩도 하고 전화도 받고, 브랜드 디자인 시스템을 바탕으로 ui 디자인 가이드라인도 만들고 개발자랑도 싸우고 컴포넌트 시스템도 만들고. 나중에는 서비스 전략에 기반해 와이어 프레임까지 잡고 있었으니 ux까지 하얗게 불태웠습니다. 가장 심각했을 때는 회사 운영 방향까지 함께 고민한 적도 있었네요. (당시 지분 하나 없는 3년 차 직원이었다)


이렇게 서비스 전반을 경험해 보는 게 재밌어 보이고 아드레날린이 솟아오른다면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은 0에서 3단계 회사에 입사하는 게 좋아요. 만약 한 분야의 스페셜리스트가 되고 싶다면 포트폴리오를 브랜딩이나 ui 중 하나의 파트에만 집중해서 3단계 이상의 회사에 지원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디자이너 연봉을 높게 받는 방법은? 전 글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회사에 입사하는 게 가장 빠르고 명확한 방법이라고 했죠? = 바로 스페셜리스트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스타트업 디자이너는 무슨 일을 하냐 주제로 돌아오겠습니다.


[기업 브랜딩]

기업 브랜딩 파트부터 보겠습니다. 기업 브랜딩은 사내에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디자인하는 업무입니다. 사무실 사이니지부터 사내 행사 디자인까지 범위도 다양합니다. 주로 같이 일하게 되는 직군은 인사팀, 경영지원팀. 그리고 회사 임원진.


가장 코어 한 업무는 앞서 기술한 브랜드 디자인 시스템 만들기.

쉽게 말해 로고 개발하고 폰트, 컬러 시스템, 이미지 톤 앤 매너 확립, 슬로건 정립, 우리 다운 것과 아닌 것을 정립해 나가는 일입니다. 최종 아웃풋은 도큐먼트 문서이며 디자인팀만 볼게 아니라 전사 공유가 완료되어야 비로소 브랜딩의 첫 발을 내디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것입니다.

https://dribbble.com/shots/7770225-Noansa-BrandBook



브랜드 가이드라인을 기준으로 하여 작게는 사내 홍보 자료를 디자인하거나 외부 pr 자료를 위한 간단한 이미지 제작을 합니다. 크게는 회사 소개서와 ir 자료를 제작하죠. 이 때는 대표님과 자주 얼굴을 맞대는 시간이 됩니다. ir 자료는 파워포인트로 만듭니다. 제 첫 회사가 ppt 전문 에이전시였어요. 이때 배운 파워포인트 스킬을 아주 요긴하게 써먹고 예쁨을 많이 받았죠. 파워포인트는 꼭 배워두시길 바랍니다. 안 써먹은 적이 없었어요.


브랜딩 디자인 업무는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지식도 갖추고 있는게 유리합니다. 직원들을 위한 웰컴 킷이나 굿즈 제작을 하기 때문이죠. cmyk는 기본이고 인쇄 지식도 갖추어 놓는 것이 좋아요. 모두 실전에서 써먹는 스킬들입니다. 경험이 쌓이면 물성을 가진 프로덕트가 어느 정도 퀄리티로 나오게 될지 예측할 수도 있게 됩니다. 또한 제작 업체와 커뮤니케이션하며 일정 조율 및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역할도 하게 되는데, 세금 계산서 발급이 세상 어렵더라는.




[서비스 브랜딩과 ui 디자인 가이드라인]

제가 몸담고 있었던 회사는 기업과 서비스의 운영 전략이 완전히 달라서 기업 브랜딩 따로, 서비스 브랜딩 따로 했습니다만, 일반적으로는 기업 브랜딩은 패스하고 서비스 브랜딩부터 시작합니다.


문서 형식은 거의 동일해요. 로고 개발, 폰트와 컬러 시스템, 이미지, 우리 다운 것들의 발굴, 그리고 합의.

여기서 나온 합의안을 ui 디자인에 입혀줍니다. ui 디자인도 개별로 작업하면 집에 못 갑니다. 시스템을 만들어 놔야 작업을 빠르게, 설득을 빠르게, 집에 빠르게 갈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것입니다.

https://dribbble.com/shots/3307781-Unamo-Styleguide/attachments/3307781?mode=media



ui 디자인 시스템 잡는 것도 한 세월 걸려서 완료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화면 무한 수정 작업이 눈 앞에 닥칩니다. 작은 스타트업일수록 기획서를 종이에 그려서 줍니다. 화면 설계서나 ia (메뉴 구조도) 그런 거 없습니다. ux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기획자를 만나면 일은 더욱 더디게 진행됩니다. 저쪽도 혼이 나가 보입니다. 결국 와이어프레임? 유저 저니 맵? action flow를 디자이너가 직접 기획해서 디자인 합니다. 시간이 있다면 프로토파이도 좀 써보고 프로토타이핑 좀 해서 개발팀에게 넘겨주면 좋겠는데. 캠페인 모델 보정 작업 요청이 들어옵니다. 정신없어요.


제가 했던 업무들을 다 쓰지 못했습니다만 대략 어떻게 돌아가는지 느낌적인 느낌은 눈치채셨을 거라 믿습니다. 다 쓰고 나니 bx와 ux는 분리되어야 하는게 분명해 보입니다! 둘 다 재밌는 사람은 어떡하지. 3년차부터는 내 코어 스킬을 어디에 둘 것인지 정체를 확실히 하는게 좋겠죠? 안 그러면 제 꼴이. 그렇지만 저는 언제나 칼퇴를 했습니다.




스타트업의 장점 : 버라이어티 한 회사 생활을 할 수 있다.

스타트업의 단점 : 디자인에 목이 말라진다. 우리도 쿨하고 멋있는 것 좀 해 보면 안 될까요..?

-응, 안돼. 당장 매출이 먼저야.


그래도 전 (에이전시 보다는) 스타트업을 좋아합니다. 진한 소속감, 내가 큰 일을 (?) 함께 하고 있구나. 이 회사를 더 크게 키웠으면 좋겠다, 이름을 날렸으면 좋겠다, 애사심으로 충만해집니다. 애사심이 큰만큼 상처도 크지만


모두 즐거운 스타트업 라이프 되세요 :) 부족하고 막 쓴 글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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