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를 좋아하는 80년대생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데즈카 오사무. 밀림의 왕자 레오, 우주소년 아톰 외에도 400편이 넘는 작품을 남기고 1989년에 고인이 되신 일본 만화의 거장입니다. 이 책은 총 14권 완결인 장편만화 <붓다>를 작가 하타 슈헤이가 해설한 내용을 한 권에 담았습니다. 옮긴이는 금강대학교 불교인문학부 정상교 교수님이지요. 어떻게 봐도 불교 서적이지만 데즈카 오사무 본인 스스로 <붓다>는 한 편의 판타지 작품이라고 부정합니다. 부처님의 전기로 받아들이기엔 가공의 인물이 많고 실제 전기 내용과 다르다는 이유로 비판도 받았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에이, 불교에 대한 책이 맞는데요?
<붓다>는 <우주소년 아톰>과 같은 종교 공상과학물이라고 데즈카 오사무는 거듭 강조합니다. 실제 내용을 따르지 않고 작가의 창작이 더해졌으니 맞는 이야기겠지요. 다만 부처님이 전하는 생명존중 사상과 인간애와 같은 사상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불교 교리를 바탕으로 한 작가의 해설이 더해져 독자는 불교의 가르침을 느낄 수 있는 것이죠. 인간의 운명, 악으로서의 인간 존재, 삶과 고통과 죽음, 생명의 소중함, 깨달음을 주제로 풀어내는 이야기는 곧 부처님의 사상이자 데즈카 오사무의 사상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이 괴로운 이유는 당신의 과거 때문
누구나 괴로움에서 벗어나 마음의 행복과 평화를 찾고 싶어 합니다. 불교에서는 세상 모든 고통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지금 괴로운 이유, 당신의 과거 때문입니다. 과거-현재-미래는 서로 이어져 있습니다. 만약 지금 불행하다면 1년, 5년 후에도 당신은 불행할 것입니다. 미래가 어두운 이유는 현재가 괴롭기 때문이지요. 행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한, 미래는 여전히 불행합니다. 운명은 강물과 같아서 과거로부터 현재로, 다시 미래로 흐릅니다. 바꾸려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의 비관은 중요하지 않아요. 자신의 힘으로 미래를 더 훌륭하게 바꾸는 것이 삶의 즐거움입니다.
힘들더라도 타인에 기대지 마십시오
부처님을 믿으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를 수 있나요? '이렇게 하면 깨달을 수 있다'라는 타인의 가르침에 의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 말은 열심히 배운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혼란스러움을 주는 동시에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는 교훈을 깨닫게 합니다. 시키는 대로만 따라 해서는 목적지에 다다를 수 없습니다. 실제로도 부처님은 꽤나 실천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지요. 흔들림 없는 마음으로 자기 자신에 기대어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비단 깨달음만이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가 추구하면서도 손에 잡지 못해 괴로운 삶의 문제들에 두루 적용할 수 있는 관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에 행복한 사람은 없음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행복해지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 헤맵니다. 설령 행복해진다 하더라도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과 비교하면 불행합니다. 반대로 자신보다 불행한 사람에 비하면 행복감을 느끼게 마련이지요. 부처님은 이 세상에 행복한 사람은 없다며, 사람은 모두 다 예외 없이 불행하다고 말합니다. 이를 깨닫는다면 남보다 행복하지 못하고 잘 살지 못한다는 불평을 멈출 수 있지 않을까요. 불만에 가득 차서 신세를 한탄하는 사람은 성장할 수 없습니다. 과거가 현재로 이어져 미래에도 불행할 뿐입니다. 결코 번뇌에서 자유로울 수도 없습니다. 인간, 동물, 식물을 포함한 모든 자연의 미물은 존재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행복도 불행도 넘어선 더 높은 차원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어떻게 살 건가요?
'만약 지금 괴롭다면 과거를 돌아보라.' '자기 자신에 기대어 미래를 개척하라.' '어차피 모든 사람은 불행하다.'라고 말하면서, 당신은 어떻게 살 것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남보다 행복할 수 있는가, 돈을 많이 벌고 비싼 물건을 소유하고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현대인은 사로잡혀 있습니다. 과도한 욕망 속에서 무엇을 위해서 아등바등 살고 있는가 자문하게 되네요. 또한 과거에 사로잡혀 현재를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욕망을 채우려는 욕망을 내려놓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 시선을 현재로 옮기고 싶습니다.
판타지여도 괜찮아, 마음에 평온을 준다면
데즈카 오사무의 <붓다>는 마치 이렇게 말을 거는 것 같습니다. "지금 힘들구나. 가엾구나. 괴롭겠지만 현재 불행한 이유를 차분하게 생각해보지 않겠니? 너 자신을 믿고 현재를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단다. 지금 행복하지 않다고 너무 비관하지 말아라. 부자든 빈자든 세상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지 못해서 괴로워한단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행복하든 불행하든 너는 세상에 존재하는 의미가 있단다." 불교와 부처님이라는 종교적 선입견과 색채를 지우고 다시 읽어도 좋은 책입니다.
부처님의 일대기를 그린 만화의 한 장면마다 해석을 달고 의미를 더하니 마치 일러스트 에세이를 읽는 느낌입니다. 데즈카 오사무가 붓다라는 이름을 빌려서 독자에게 다정하게 위로를 건네는 느낌입니다. 만약에 부처님이 현시대 사람이라면, 이렇게 인간과 만물에 대한 사랑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에세이를 한편 쓰시지 않았을까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