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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어리 Sep 05. 2021

그라스 프라고나르 향수를 쓰지 않는 이유

니치 향수 프라고나르(Fragonard)를 아시나요?

"오빠 저희 그라스에 갈 건데 같이 가려면 가요."


2011년. 아는 동생이 봄 방학 동안 후배 두 명과 그라스에 가지 않겠냐고 말했다. 영화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2006)`에 나오는 향수의 본고장인데 여기서 버스를 타면 쉽게 갈 수 있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리옹 근교 여행`을 검색했다. 거의 1유로 정도만 내면 니스, 칸, 모나코까지 금방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대학교 3학년을 앞두고 화석이 되어가던 중에 도피성 어학연수를 떠나온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후배의 제안이 없었더라면 10년 뒤의 현재 생활과 같이 자신의 영역 안에서 철저히 안주하는 생활에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 터였다.


다만 여행 멤버가 마음에 걸렸다. 이 먼 프랑스 남부지방까지 와서도 누군가를 챙겨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당시 다니던 리옹 IDRAC 비즈니스 스쿨에서 한국인 유학생은 우리뿐이었고, 나는 가장 연장자이자 유일한 남자였다. 여자 후배 세 명과 나는 한국 사람끼리 서로 챙겨야 한다는 도의적 책임에 따라 같이 수업을 듣고 한가한 시간에도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함께했다. 오래 보고 많은 시간과 추억을 공유할수록 처음에 존댓말을 했던 우리는 말도 놓고 의지할 수 있는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라스가 얼마나 매력적인 곳인지에 관한 후배의 설명은 설득력이 있었다. 다만 프랑스로 도망쳐올 때의 내 상황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두고 온 사람이 있었다. 대학교 2학년 조별 수업에서 어떤 사람을 만난 이후로 그와 잘 되는 건 혼탁했던 삶의 유일한 빛이었다. 학점이 어떻고 인턴 경험을 쌓고 취업이 어쩌고 하는 문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때는 머릿속에 온통 그에 관한 생각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대학생의 패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과감한 애정 표현에 거리낌이 없었다. 뒤를 생각하지 않고 저돌적으로 애정 공세를 펼치는 과감성이야말로 10년 후 지금 내가 거의 완전히 상실해버린 기능이다.


안타깝게도 당시 남자친구가 있던 그와는 더 이상의 관계 진전이 불가능했다. 방향성을 잃어버린 열에너지를 잔뜩 기화시켜버린 채로 빈 껍데기 같은 생활을 지속하던 나로서는 도피처가 절실했다. 핀볼 게임에서 아무 방향으로나 버튼을 연타하듯이 삶의 행로를 결정해버린 결과로 나는 리옹에 있었다. 생소한 타지를 여행하는 동안 꾸준히 사서 모은 건 엽서였다. 잘 지내냐는 짧은 글을 쓰고 수업이 비는 날엔 동네 우체국에 가서 몇 유로를 내고 국제우편을 부쳤다. 그동안 나는 자연스레 다른 이성에 대해서는 담을 쌓고 지냈다. 이러한 개인적인 이유로 나에게 한국인 동생들은 이성으로 느끼지 않았지만 이성이었다. 그들에게 나는 의지할만한 복학생이자 믿을 수 없는 밉상이었다.


당시에는 혼자만의 낭만을 지킬 용기는 있어도 미움받을 용기는 없었다. 생각해보면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 사람에게 나중에라도 줄 만한 유니크한 선물을 살 수 있는 곳이었으니까. 어영부영 "그래 가자."라고 말하고서는 여행지에서는 각자 구경하자고 말하는 통에 결국 터질 것이 터져버렸다. 그동안 나의 은근한 거리두기를 참고 참았던 `유일하게 불어를 할 줄 알았고 여행을 주도했던` 후배가 결국 폭발해버렸다. 프랑스 남부 지방에 있는 그라스의 풍광과 아름다움이 어땠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후배의 기분이 풀어지기 전까지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던 기억, 프라고나르 향수 박물관에 가서 남녀 공용 향수를 두 병 사 온 것 외에는 남은 기억이 없다. 후배에게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와중에도 나는 `병이 흔들리면 향이 변할 수도 있다던데 한국에 가져갈 때까지 괜찮을까?` 하는 따위의 걱정으로 머리가 아팠다. 그라스는 내게 `프랑스 그라스 지방에서만 특별히 구할 수 있는 선물을 사는 곳` 이상의 의미가 없었던 것 같다.


서로 유난히 얼굴을 붉힐 일이 많았던 후배 덕분에 알게 된 향수 브랜드 프라고나르. 와인에 취해서였든, 마시지 않았든지 사람들 다 있는 데서 "오빠 저 어때요?"라고 놀리기를 좋아했던 그.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아름다운 남부 프랑스를 구경하지도, 조향사들에게 꿈의 도시라는 그라스에 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Gare de Lyon-Perrache" 라는 지하철과 트램 알림음을 듣고 내려서 구경했던 페라슈 광장의 추억도 그의 선물이다. 졸업 후에도 이어온 홈스테이 가족과의 인연으로 그는 프랑스 남자친구를 만들고 리옹으로 떠난다는 소식을 우리에게 남겼다. 밀수품을 들여오는 심정으로 소중하게 가져왔던 프라고나르 향수는 결국 엽서의 주인을 찾아 선물하는 데에 성공했다. 수년의 짝사랑과 3번의 고백을 포함해 수개월이 지나고 우리는 교제했다. 그리고 1년 뒤 헤어졌다.


몇 년 전 롯데월드 월드타워몰에서 새롭게 오픈한 프라고나르 매장을 발견했다. 무려 아시아 최초 플래그십 스토어. 과거 향수 한 병을 얻기 위해서 겪었던 고난과 고행이 떠올랐다. 해외 직구가 발달하면서 `오직 현지에서만 구할 수 있는 선물`의 낭만은 진작에 사라지고 있었다. 그래도 이건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호선을 타고 잠실역에서 내리기만 하면 열 병도 살 수 있게 되었으니까. 아직도 나는 매장을 종종 지나치지만, 너무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니치 향수인 프라고나르를 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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