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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어리 Apr 20. 2021

사람도, 동물도, 기계도 아닌 것은?

미라클 모닝대신 미라클 야옹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앍, 웱” 아침 6시 5분 알람을 끄고 다시 자려던 찰나에 괴상한 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철렁하고 몸이 스프링처럼 튀어 올랐다. 비몽사몽 한 감각으로 성큼 성큼 걸어가 손을 짚어 간접등 스위치를 켰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주황색 조명이 화장실 앞을 밝혔다. 고양이 사과가 납작한 자세로 바닥에 엎드려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사과가 남긴 흔적을 발견했다. 기계적으로 화장지와 물티슈를 들고 로봇청소기처럼 바닥을 깨끗하게 닦았다. 어디가 아픈지 사과에게 물었다. 사과는 말이 없다. 사람이라면 표현을 할 텐데, 기계라면 어디가 고장 났는지 보면 알 텐데 고양이는 통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다. 되려 집사의 말에 물음표 같은 표정으로 대답한다.

 


 아침 소동과 함께 침대에서 뒹굴거릴 수 있었던 휴식도 끝이 났다. 헬요일 시작을 알리는 세리머니 같다. 토악질을 멈춘 사과의 모습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이상하리만치 평온하다. 바닥에 비친 자신의 뾰족 귀 모양 그림자를 착 엎드린 자세로 구경하고 있다. 욕실에서 세수를 하고 나와서 다시 한번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이번에는 배를 드러내고 누워서 기분이 좋다는 듯이 대답도 잘한다. 잠결에 달그락달그락하며 밥그릇을 비우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데 안타깝다. 잘 먹어도 모자랄 판에 속을 게워낸 작은 녀석을 보니 안쓰러운 감정이 들었다. 안 그래도 자주 토하는 사과가 걱정이 되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책장에 꽂아둔 책을 꺼내 펼쳤다. 고양이가 자주 토하는 이유는 굉장히 포괄적으로 크게는 세 가지가 있다. 음식 알레르기, 헤어볼, 염증성 장질환이다. 2018년에 종방한 CBS 고양이 전문 방송을 바탕으로 펴낸 책 ‘키티피디아’에 그렇게 나와있었다. 계속 구토가 있는데 고양이의 상태는 활발하다면 장에 염증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염증성 장질환은 혈액검사로는 발견이 불가능하다. 초음파 검사를 하거나, 따로 내시경 검사를 해야 한다. 한 날에 내시경과 초음파 검사를 모두 할 수는 없으니 각각 스케줄을 잡아야 한다고 나와있었다. 병원만 갔다 와도 스트레스로 집에 와서 토를 하는 사과에게 가능한 일일까?



 출근을 앞두고 어깨를 구부리고 앉아서 고양이 건강을 걱정하는 집사. 속 편하게 벌러덩 드러누운 사과. 강아지와 주인이 서로 닮아가듯 우리도 시원찮은 면을 닮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목요일에는 4개월 만에 회사일로 잔뜩 술을 마시고 숙취로 무척 고생했다. 새벽까지 두통과 구토에 시달렸다. 다음날인 금요일 또 술을 마셨다. 자다가 번쩍 일어나서 토하고 난리를 피우느라 사과가 잠을 설칠까 봐 걱정이 되었다. 화장실 문을 열자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사과가 척하고 들어왔다. 잠을 깨운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했다. 우리는 서로를 살피는 존재들이다.



 ‘아기가 약 먹고 토하면 다시 먹일까요?’ ‘아기가 잘 토하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인터넷에 ‘아기가 토하면’이라고 검색했더니 찾은 제목들이다. 검색어를 ‘고양이가 토하면’으로 바꿔도 비슷한 게시물을 찾아볼 수 있다. 작은 동물은 자라고 나이가 들어도 아기나 다름이 없다. ‘왜 토하는 걸까..’ 네이버에서 찾은 한 지식인 답변은 밥을 급하게 먹어서라고 한다. 바쁜 주중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허겁지겁 빵과 우유를 먹으면 꼭 회사 가서 탈이 난다. 사과도 배고픔에 사료를 빨리 먹느라 위가 놀란 거라면 좋겠다. 기상시간을 뜻하지 않게 한 시간 앞당기는 바람에 눈꺼풀이 무겁다. 사과는 이제 괜찮다. 벌써 오늘 할 일을 다 한 느낌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아프면 걱정하는 마음이 드는 게 순리다. 인터넷에 검색해보고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 증상을 찾아볼 책을 구비해 둔다. 밤새 아프면 돌보면서 그렇게 살아간다. 하물며 기계도 이상을 보이면 작동을 멈추고 A/S를 받는다. 이틀 연속 술자리로 고통받고 주말 이틀을 고스란히 회복하는 데 사용한 다음 다시 출근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일만 잘하면 모든 게 괜찮은 회사에서 온정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원치 않는 음주도 업무의 일환이다. 술병이 나서 아파서 어떡하냐는 물음보다는 ‘그동안 술을 안 마셔서 그렇네’라는 진단을 내린다. 술병이 나면 술을 더 마셔라. 사람도 아닌, 동물도 아닌, 그렇다고 기계도 아닌 노동자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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