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국에 실직한 친구를 만났다
친구가 코로나 시국에 실직했다. 정확히는 사직이다. 버스기사일을 하다가 자진 사표를 내고 그만 둔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한 달 사이 무려 세 번의 사고를 내고 일을 그만두었다고 말해주었다. 한 번은 운전 중에 다른 차를 긁었다. 두 번째는 차고지에서 차가 미끄러져서 다른 버스를 살짝 들이받았다.세 번째는 눈길에 미끄러져서 택시 뒤를 받았다. 앞으로 두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회사에 약속한 친구는 추가 사고 두번으로 삼진 아웃을 당하고 스스로 타석에서 물러났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집에서 멍하니 있다는 친구를 불러냈다. 정자역에서 만나서 삼겹살을 먹었다. 친구의 불행을 불쌍히 여기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 조심하며 그동안 있었던 일을 들었다. 버스 회사에 취직하던 날에는 앞으로 평생 이 회사를 다니리라 상상햇다고 했다. 회사에서 사계절용 유니폼을 열 아홉벌이나 지급해줬다는 이야기를 하며 보급품 상자를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하계용 얇은 셔츠부터 겨울 코트가 겹겹이 쌓인 옷가지만큼이나 애사심이 두터웠을 것 같다.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얻은 직장이니 더욱 그렇다.
분위기가 무거워서 대화가 끊기려나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랬구나, 그랬구만 하고 대답하는 사이 삼겹살이 바싹 익었다. 타지 말라고 김치 위에 올린 고기처럼 친구는 하고 싶었던 말을 쌓아뒀나보다. 친구를 만나기 전에는 그에 대한 관심이 추궁처럼 들리지 않게 주의해야겠다고 생각 했다. 운전을 좀 조심히 하지 그랬냐는 이야기라든지 어쩌다 그런 사고를 냈느냐는 식의 이야기는 안 하는것만 못하다. 말할 마음이 들다가도 입을 다물게 만든다. 속이 답답한 사람은 캐묻지 않아도 어련히 이야기를 토해내기 마련이다.
버스가 눈길 위를 미끄러지는 동안 친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고를 낼 때마다 계단을 통통 튀어 내려가는 공처럼 인생이 한 칸씩 밑으로 떨어졌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체념한듯한 친구의 표정도 다 소용없음을 말해준다. 이야기 하는 중에 식당 종업원이 고기를 뒤집어주러 우리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도 친구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회사도 그만둔 마당에 누가 들어도 뭐 어떠냐는 느낌의 실패담이었다.
잠깐 시선을 돌리는 중에 옆 테이블에서 사고가 났다. 물병을 가져다주던 종업원의 손이 미끄러져서 손님 쪽으로 플라스틱 물병을 퉁 하고 떨어뜨리고 물을 엎질렀다. 연신 죄송하다고 말하는 종업원을 보니 '저 사람인들 손에서 물병을 놓치고 싶어서 그랬을까.' 하는 연민의 감정이 들었다.
버스가 얼음 위를 미끄러지는 순간이나 물병을 손에서 놓치는 순간은 어떤 수를 써도 통제가 불가능하다. 엎질러진 물이요, 미끄러진 버스다. 인생에는 아무리 조심해도 피할 수 없는 불행을 받아들여야 하는 때가 있다. 제작년에 내게도 악재가 세번 연달아 날아왔다. 감사팀에서 보내는 '주의' 조치 문서를 세번 연속으로 받아버렸다. 삼진 아웃이다.
규정에 어긋나는 행정처리와 같은 사소한 실수를 하면 주의 조치를 받는다. 더 큰 잘못을 하면 경고 조치를 받는다. 나는 사소한 실수일지언정 세번이나 저질렀으니 문제였다. 자조적인 심정으로 팀 사람들에게 "이로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습니다." 라고 말하던 기억이 난다. 개인 성과 평가는 물론이고 앞으로의 직장생활도 망한거라 다름 없다고 자책하고 낙담했다. 결과는? 놀랍게도 다음해에 승진하고 평가도 그럭저럭 잘 받아서 희한했다.
회사에서 기사회생한 일을 생각해보면 '인생은 삼세판'이 규칙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왠만큼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니면 하는 일마다 단 몇 번 만에 잘하기가 쉽지 않다. 노력 없이 인생이 잘 풀리길 바라는 건 긍정 심리가 아니라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다. 인생에서 실패한 경험을 제대로 헤아려보자면 말그대로 셀 수 없다. 우리가 기억하는 건 그 중 비중있거나 인상적인 실패 경험 몇 가지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살면서 원하는 걸 쉽게 얻었던 적이 얼마나 있을까. 여태까지 이루지 못한 무수히 많은 인생 과제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연애, 결혼, 내집 마련도 어쩌면 될 때까지 부단히 도전해야 될까 말까한 게 아닌가. 세 번 고백해서 사귀었던 첫 연애. 네 번도 넘게 매달리다 끝난 짝사랑. 50번 이상 낙방하고 얻은 첫 직장. 수백 번 넘게 거절당하고 받은 출판사 연락. 뭐든지 한 번에 되는게 많지 않다. 때때로 당면하는 '인생 퀘스트'를 수락하고 시도하다가 세 번, 네 번 실패해도 우리는 계속 도전한다. 게임처럼 접고 그만 살 인생이 아니다. 삶은 계속된다.
친구의 인생도 여기서 끝이 아니다. 버스 운전석에서는 내려왔지만 당분간 배송일을 하며 경력을 쌓다가 1~2년 뒤에 다시 버스회사에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혼자 생각한 게 아니라 직장 동료 기사들의 조언이었다. 눈길 사고는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일인데 하필이면 친구에게 불행이 몰린 거라고 동료들 사이에서 이야기하고 있으니 너무 자책하지 말라는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인생에는 누구나 세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 '앞으로 세 번의 기회를 주겠다'와 같은 말이 있는 걸 보면 우리나라 사람에게 3이란 숫자는 한정된 기회를 상징하는 듯 하다. 인생은 야구가 아니다. 인생에는 삼진 아웃이란 게 없다. 한편으로 최대 몇 번까지 실패해도 되는지도 알 길이 없다. 결국 주어진 환경에서 끊임 없이 손 발을 휘둘러보는 수밖에 없다. 정답이 없는 규칙 속에서 시도하고 실패하고 될 때까지 버티는 방법이 최선인지도 모른다. (2021.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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