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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어리 Sep 26. 2021

미혼에게는 죄가 없다

괜찮은 싱글이 괜찮지 않은 이유를 제공하는 이들에게

언제까지고 괜찮은 싱글로 남아있을 거라는 확신이 매년 줄어든다. 인생의 모든 단계에 걸쳐 혼자 뒤처지는 느낌이 발목, 종아리를 지나 이제는 뒤에서 어깨를 꽉 움켜쥔다. 고양이만 3년째 키우고 있으면 뭐 하나. 또래 친구들은 아이들 어린이집 보낼 생각에 여념이 없다. 내 아이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뿐더러 잉태 단계에도 미치지 못하였는데 그 이유는 내 아내 될 사람이 아직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태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는 아이를 품을 수가 없다. 아이란 무엇인가. 아내란 무엇인가. 애초에 결혼이란 무엇인가.


여자와 남자가 만나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는 결혼 때문에 혼자여도 대략 괜찮다가도 괜찮지가 않다. 을지로 4가 우래옥에 들러서 평양냉면을 먹었다. 좁은 1차선 골목길을 따라 차들이 줄줄이 들어온다. 30팀이 넘는 웨이팅을 뚫고서라도 연인 혹은 부부, 아니면 가족끼리 고깃국물이 진하게 밴 국물과 함께 면치기를 하러 온다. 내일 출근이 어떻고 다음 주에 할 일이 무엇이든 일요일 저녁의 평화를 누릴 권리가 그들에게는 있다. 창덕궁에서부터 무거운 발걸음으로 걸어서 냉면 한 그릇을 비우고 우래옥에 오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관찰했다. 일요일 저녁에 최고의 재료로 정성 들여 만든 음식 한 그릇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행복 앞에서는 교통체증도 삶의 고됨도 그다지 문제 될 것이 없다. 냉면을 같이 먹은 사람과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샌가부터 주위 친구들이 하나둘 씩 결혼한다. 내킬 때 큰 노력 없이 당연하게 만나서 시간을 함께 보낼 친구들이 배우자를 만나 결혼이라는 강력한 관계를 맺으면 사실상 만난다는 일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워진다. 이 힘든 세상에서 언제나 함께했던 친구들이 점점 사라지는 통에 늘 든든한 내 편 한 명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맞는 말이다. 물론 '작아 맞는' 말이다. '작아 맞다'라는 말은 좀 작은 듯하게 겨우 들어맞는다는 뜻이다. 자발적인 의지보다 시간이 흐르면서 주어진 빠듯한 상황에 자신의 처지를 맞추는 해석이다. 바꿔서 생각해보면 주변 인물들이 결혼해서 내 사람들이 멀어져 가므로 나 또한 결혼을 하여 세상이 무너져도 내 편인 한 사람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은 바로 주변 사람들이 결혼한 결과다.


'혼자여도 괜찮은 자유로운 싱글로 잘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른 이들이 결혼을 해버리는 통에 내가 외로운 것이다. 즉 내게는 잘못이 없다! 결혼한 니들이 잘못이다.'라는 논리에 다다랐다. 이야기를 듣던 예비 유부남이 탄식하며 "맞다. 이것은 죄수의 딜레마이다."라고 동감했다. 나도 엉겁결에 맞다고 맞장구를 쳤다. 실은 그게 무슨 말인지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하였다. 뒤늦게 검색해보니 죄수의 딜레마란 쉽게 말해 '다 같이 협동하면 WIN-WIN 할 수 있는데도 배반하는 상황'을 말한다. 그의 대답을 곱씹어보니 참으로 그럴싸한 해석이었다. 드라마 대사처럼 "우리 모두 행복할 수 있었는데 네가 모든 걸 망쳤어."라고 원망하기에 적격이다. 그러므로 이제껏 결혼하지 않고 무얼 하느냐는 주변의 궤변에 속지 말아야 한다. 결혼을 안 한 내게는 죄가 없다.


결혼함으로써 평온한 삶에 균열을 만드는 세상의 모든 사랑하는 이들에게 되려 이 글을 나의 항변으로서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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