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승인 축하 현수막이 걸린 아파트를 뒤로하고 등산을 했다.
"너 엄마랑 산에 안 갈래?" 잔소리를 피해 겨우 방으로 도망쳤는데 엄마가 부르셨다. 책 좀 읽다가 침대에 누워서 눈 좀 붙이려고 했는데 망했다. 베개에 눌린 옆머리를 대충 매만지고 신발을 신었다. 집 뒷길을 따라 5분 정도 걸었더니 황량한 비닐하우스 길이 나왔다. '출입금지'라고 인쇄된 노랗고 검은 테이프로 양 옆에 울타리를 쳐놓았다. 엄마는 새 아파트가 안쪽 깊숙이 들어서는 것 같다며 등산로 입구를 가리키셨다. 출입금지 울타리는 등산로 앞까지 뻗어있었다. 재건축을 하면 어디서 사실 거냐고 여쭤보았다. 엄마는 모르겠다며 산을 오르셨다.
두세 달에 한 번씩 부모님 댁에 갈 때마다 엄마는 장을 같이 보거나 등산을 함께 하자고 권하셨다. 그때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거절하기 바빴다. 본가에 온 것만으로도 벌써 심신이 지쳤기 때문이다. 부모님과의 대화는 매번 같은 잔소리와 과거에 대한 후회가 주내용이다. 대학교를 어디 갔어야 했고 직장은 무엇을 했어야 했으며 집을 괜히 팔았다는 등의 이야기다.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게 대화임을 생각하면 대화가 아닌 셈이다. 일방적으로 듣느라 지친다. 오늘도 적당히 밥만 먹고 도망쳐야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엄마가 산에 가자고 하셔도 피곤하다고 둘러대면 될 일이었다. 엄마는 한두 번 더 물어보시다가 평소처럼 등산용 지팡이를 들고 혼자 산에 갔다 오실 거다. 그 후 한 시간쯤 지나 점심식사를 다 함께 하고 여느 때처럼 서울로 돌아가면 된다. 매번 이렇게 밥만 한두 끼 먹고 가는 식이다 보니 불효하는 죄책감이 들어서일까? 인생 2회 차의 느낌으로 이러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엄마를 따라나섰다. 피곤해도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를 생각하면 두고두고 마음에 걸린다. 두 번 실수할 수는 없다.
“할머니 하고 서울대공원 좀 가자. 할머니 소원이야.” 대공원이 흥미로울 나이는 한참 지났지만 할머니가 소원이라시며 치트키를 쓰시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 대학생이 되어 할머니와 다시 찾은 대공원은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우선 무려 대학생이나 되어서 할머니 손을 잡고 놀이공원에 간다는 사실이 조금 창피했다. 그보다 더욱 우울했던 이유는 눈에 띄게 줄어든 할머니의 체력과 키였다. 돌계단을 힘차게 오르시던 할머니는 더는 없다. 우리는 장미공원 근처 벤치에 앉아서 김밥을 먹었다. 머리 위로는 스카이리프트가 떠다니고 있었다.
소풍을 온 중고등학생들이 리프트 위에서 행여 쓰레기를 떨어뜨리거나 해코지를 하면 어쩌나 괜히 신경이 쓰였다. 다행히 학생들은 비비탄 총을 쏘거나 깡통을 던지지 않았다. 문제는 스카이리프트를 타자고 하시는 할머니였다. 고소공포증이 있던 나로서는 질색할 수밖에 없었지만 응할 수밖에 없었다. 식은땀이 나는 양 손으로 안전바를 잡았다. 할머니는 내 오른팔에 꼭 팔짱을 끼셨다. 리프트에서 내린 나는 한 번만 더 타자는 할머니의 부탁을 들어드리지 않았다. 공원 경치가 장관이라고, 두세 번 더 조르시던 할머니도 아쉬워하시며 더는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그게 할머니와 탔던 마지막 스카이리프트였다. 이듬해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아마 나는 스카이리프트를 두 번이나 타지 않겠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후회할 것이다. 등산도 마찬가지다. 선천적으로 높은 곳에 올라가는 걸 무서워한다. 심약하기 때문이든 어떤 누명이든 상관없다. 산은 그저 일요일 아침에 디즈니 만화동산을 뒤로하고 아버지에 의해 소 끌려가듯 정상까지 올랐다 내려오는 곳이었다. 요즘 인싸들은 온통 산으로 향하는 것 같다. 산린이(등산과 어린이의 합성어)가 되는 일은 끝까지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단지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아서 엄마를 따라간 것뿐이다.
대학교 졸업 후 10년이 지나 엄마와 함께하는 첫 등산이었다. 대학교 때 할머니와 갔던 대공원 소풍의 데자뷔였다. 가벼운 뜀박질도 거뜬히 하셨던 엄마는 더는 없다. 눈이 녹아서 땅이 미끄럽다며 한 손에 등산용 지팡이를 드시고 조심히 걸으시는 엄마의 뒤를 따랐다. 예상대로 엄마는 두세 달 분량만큼의 잔소리를 내내 하셨다. “원래 살던 집은 팔고 나니 7억이 올랐다.” “부동산 사이클을 공부해야 내 집 마련할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다.” “집은 회사에서 가까울수록 좋다.” “서울에 자리를 잡고 절대 나오면 안 된다….” 나는 엄마에게 부동산 시장이 어떻게 될지 맞출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말하며 어서 가기나 하자고 재촉했다.
우리는 ‘사색의 광장’이라는 곳을 지나 잣나무 숲에 도착했다. 그렇게 힘들어하시면서 어디까지 올라갈 거냐고 불평을 했더니 엄마는 여기가 끝이라고 하셨다. 가쁜 숨을 내쉬시던 엄마는 나무좀 올려다보라고 말씀하셨다. “사계절 내내 잎이 매달려있다니 대단하지 않으냐.” “나중에는 잣이 열리는데 그때가 되면 청설모가 가지를 부러뜨리고 떨어뜨려서 잣을 전부 먹어버린다.”라고 하셨다. 잣열매는 늦여름에서 초가을에 수확한다. 이 동네에 이사 온 이후로 엄마는 하루 한 번씩은 이 숲을 찾았다. 누군가는 엄마와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들어줬어야 했다. 숲에 대한 감상도 나누고. 엄마는 부동산만 생각하면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고 한숨을 쉬셨다.
눈이 녹은 진흙탕을 몇 번이나 밟으며 산을 내려왔다. 같은 길을 수없이 다니신 엄마도 어디로 가야 하냐고 되려 물으시며 이리저리 질은 땅을 피하셨다. 몇 번 헤맨 다음에야 마른땅이 나왔다. 아까 빨리 하산하자고 엄마를 재촉한 게 마음에 걸렸다. 조금만 더 하소연을 들어주었으면 어땠을까? 좀 더 일찍 엄마와 잣나무 숲을 찾았더라면? 한편으로 후회가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지난 과거만큼이나 앞날을 내다보는 것도 의미가 없다. 집 값이 언제 내릴까? 엄마는 재건축을 하면 어디에서 살아야 할지 모르신다. 우리 모자는 당장 다음 걸음에 밟을 땅을 찾느라 급급하다. 나도 아들이 처음이고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다. 좀 틀리면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