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을 이용해서 글을 쓰면 생동감 있고 잘 읽히는 글을 쓸 수 있다는 조언을 들었다. 오감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말한다. 오감에 식스 센스, 육감을 더해 여섯 가지 감각이 있다고도 한다. 오늘날에는 평형감각, 피부 아래 근육으로 느끼는 심부감각, 내장으로 느끼는 통각을 뜻하는 내장감각까지 8가지 감각으로 분류한다. 늦은 밤 회식을 마치고 집에서 글을 쓰기까지 경험한 8가지 감각을 나열해본다.
망고 목살(고기에 난 칼집이 망고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과 돼지껍데기가 육즙을 내며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는 소리를 들었다. 시각과 청각이다. 콩고물을 한껏 묻혀서 입가에 갖다 대면 고소한 냄새가 난다. 후각이다. 질겅질겅 하리보 젤리 같은 쫄깃한 식감과 고기의 맛을 느낀다. 미각과 촉각이다. 코로나 19 방역정책에 따라 9시가 되면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본능적으로 우리는 맥주든 소주든 안주든 무엇인가 더 시켜야 함을 알아차린다. 징글맞은 육감이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고기와 술을 마시는 상황에서 근육과 내장으로 통증을 느낄 일은 없다. 남은 한 가지는 평형감각이다. 직진과 회전운동을 할 때 느끼는 가속도에 대한 감각을 뜻한다.
제자리에서 코끼리 코를 하고 빙글빙글 열 바퀴를 돌고 멈추면 어지러운 이유. 바이킹을 타고 높이 올라갔다가 공중에서 추락할 때 느끼는 가속감을 느낄 수 있는 이유. 평형감각 때문이다. 회사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평형감각이 고장 날 일은 없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땅에 붙어서 이동한다. 기안84 만화 '복학왕'에 나오는 광어 인간처럼 땅에 붙어 있는 동안에는 어지러울 일이 없다. 가끔 땅에서 멀어질 일이 있을 때 불안감을 느낀다.
어려서부터 고소공포증이 있는 편이다. 하필이면 놀이공원으로 소풍 가는 날은 고역이다. 돈을 내고 체험하는 고통이라니 말이 되지 않는다. 놀이공원을 졸업한 지금은 가끔 타는 비행기의 이착륙과 터뷸런스가 두렵다. 등산할 떄 내려다보는 풍경이 무섭다. 이태원 삼거리를 지나려면 어쩔 수 없이 올라야 하는 육교가 원망스럽다. 지면과 멀리 떨어진다는 느낌은 공포다. 고소공포증도 오감 혹은 여덟 가지 감각과 관련이 있는 걸까?
서울대학교병원 의학 정보를 읽어보면 현대의학은 고소공포증을 감각보다는 불안장애로 설명한다. 불안한 감정을 관장하는 신경회로에 이상이 있어서 그렇다. 뇌에서 감정회로의 핵심 기능을 담당하는 편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도 본다.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감정은 평범한 일상에서 멀어질 때 느끼는 불안감과도 관련이 있다. 종일 일하고 회식까지 마치고 집에 오면 지친 몸을 녹이다 잠든다. 오로지 회사 일에 충실하다가 하루를 마감하지만, 노동자의 본분을 다했다는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퇴근 후에 자신만의 저녁 루틴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수록 평범에서 멀어진다.
정규 일과시간을 마치고 글을 쓴다거나 유튜브 영상을 찍는 일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보통과는 거리가 멀다. 보람찬 노동을 마친 후에는 군대처럼 개인 정비 시간을 갖고 내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게 성실한 직장인의 자세 아닌가? 회사에 충실한 직원으로 사는 삶이 인생의 전부가 되지 않도록 있는 힘껏 지면을 딛고 걸어보기도 하고 뛰어보기도 한다. 낮은 곳에 있던 시점이 높아지며 살짝 어지러움을 느낀다. 편안하지 않은 감각은 곧 위험이 아닌가? 왜 나는 평범한 삶을 꿈꾸지 않지? 한편으로는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다가 맞을 파국이 더욱 불안하기에 오늘도 퇴근 후에 허튼짓을 꾸민다. 비록 정신질환이라는 진단을 받을지언정 불안하지 않을수록 불안한 감정을 더욱 경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