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 하다 답답해서 '내책내소'하고 싶은 초보 저자 필독
유튜버 슈카월드님이 가끔 방송에서 자조적인 개그를 할 때 쓰는 말이 입에 착착 붙어서 속으로 읊조렸다.
'이것이 인생이다.'
삶은 결코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새삼 체감하곤 한다. 인스타그램에서 영향력 있는 북리뷰어 분께 일면식 없이 리뷰를 요청했을 때도. 지웠다 썼다를 반복한 DM을 보냈지만, 상대는 묵묵부답. 조용히 생각했다. 'This is life, 이게 인생이다!'
무료로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책을 보내준다는데. 귀하의 영향력을 존중하는 의미로 소정의 협찬비를 드리겠다는데도 거절당했다. 얼마 뒤 그의 피드에서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가 된 유명 작가의 도서 리뷰를 발견했다.
하긴 역지사지해보면 광고·협찬도 상품 나름이다. 광고를 받는 입장에서 어떤 아이템을 협찬받는지도 본인 브랜딩에 영향을 미친다. 바꿔 말하면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유명 작가의 책은 '내돈내산' 해서라도 리뷰를 남기고 싶다. 객관적으로 생각하니 자존감이 낮아졌다.
'인생이란 이런 것이다.'
초보 저자의 우울은 어디에서 오는가? 어쩌면 책 한 권을 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 그 대단함만으로는 책이 팔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열심히 셀프 홍보를 하고 해 보고 온라인 발품을 팔면서 주변에 리뷰를 부탁해본다. 그리고 현실을 체감한다. '착각이었구나..!'
팔리는 작가가 되겠다고 각오한 이상, 당신은 1일 1 영업을 하며 적지 않은 무시와 거절을 견뎌야 한다. 책만 내면 인생이 풀릴 줄 알았는데, 오히려 꼬여가는 기분이 든다. 지친 나머지 당신은 '흑화'해버릴 수도 있다. 어차피 인생은 '될 놈 될, 안될 안'이라고 생각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내책내소? 이런 매대를 차리려면 얼마나 돈이 들까? 또 어느 정도나 유명해야 받아줄까?
교보문고 영등포점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내책내소라는 코너에 관한 게시물을 발견했다. #내책내소 코너는 베스트셀러 서가 옆에 마련된 미니 단독 매대다. 오직 신청 작가의 책 한 권을 일정 기간 동안 홍보 배너와 함께 오롯이 진열할 수 있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교보문고 영등포점에 그것도 매장 중앙에 이런 단독 매대라니.. 여기 책을 진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러운 마음으로 코너를 거쳐간 작가들의 이력을 살펴보았다.
- 구독자 94만 2천 명. '타락 헬창', 'BJ 치즈볼'로 유명한 문석기 작가님의 '핏블리의 헬스 다이어트 전략집'
- 하루 만에 7쇄를 찍은 레전드 저자 김옥선 님. 지구 상에서 여행을 가장 재미있게 하는 구독자 61만 4천 명의 '여락이들' 채널 크리에이터이기도 하다. '설레는 건 많을수록 좋아'라는 책을 썼다.
'역시 이런 사람들이 단독 매대에 자기 책을 진열하는구나.'
- 국내 최초 구독자 110만 명 여성 운동 유튜브 채널 '힙으뜸'으로 유명한 심으뜸 작가님의 책 '으뜸 체력'도 #내책내소 단독 매대를 거쳐갔다.
대충 이쯤까지 참여 작가들을 확인한 나는 마치 외제차 전시장에서 계약 상담을 받는 사람들을 창문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심정처럼 심리적 거리감을 느꼈다. 아니 어쩌면 서울 부동산을 매매 계약하는 사람을 딴 세상 이야기처럼 쳐다보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야, 저렇게 꾸미는 데에 면적당 단가가 얼마일까?' 하는 식으로.
"#내책내소 참여의사 또는 문의가 있는 작가님은 kyobobook.com@gmail.com으로 메일 주시면 빠른 시일 내에 답변드리겠습니다. 관심 있는 작가님들의 문의를 환영합니다."
출간 2달 차 저자인 나는 이미 비관주의에 축축하게 젖은 지 오래되었다. 그러면서도 나름의 뻔뻔함을 잃지 않았다. 되든 안 되든 시도하는 건 내 자유였다. 물어보는 데에는 돈이 들지 않았다. 심사숙고 끝에 심혈을 기울여 이메일을 쓰고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보통 퇴근 전까지는 읽고 답장할 텐데 조금 늦네.'
'내부 검토가 오래 걸리나보다.'
삼일 정도가 지나자 매생이처럼 검은 회의감에 멱을 감는 기분이 들었다.
관심 있는 작가님들의 문의를 환영합니다. 문의는 자유.. 그렇다. 문의는 자유였다.
'답장을 준다고는 써놓지 않았잖아. 내가 교보문고 직원이라도 금 같은 매대에 아무 인지도가 없는 내 책을 놓을까, 이름만 대면 열에 아홉은 아는 유명인의 책을 놓고 싶을까?' 이왕이면 영등포점에 조금이라도 득이 되는 사람의 도서를 받아주지 않을까.
이것 참 유명 저자만 주목받으면 병아리 저자는 어떻게 유명세를 쌓으란 말인가. 책을 알리려면 팔아야 되고 팔려면 사람들의 눈에 보여야 한다. 매대에 진열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책은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다.
'This is Life, 이것이 인생이다!"
'될 놈 될 안될 안'(될 놈은 되고 안 될 놈은 안 된다.)이라는 비관주의를 멀리하자고 본인이 책에 써놓고 언행일치를 지키지 못하다니 최악이었다.
교보문고에 #내책내소를 지원했던 사실 자체가 바로 어제 먹은 회사 점심 메뉴만큼 흐릿해질 무렵, 이메일 푸시 알림 진동에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서 화면을 봤다.
제목 : "[교보문고영등포점] 내책내소"
내용 :
안녕하세요 작가님, 메일에 답장이 늦어져 죄송합니다.
내책내소 진행 <12월 5일 일요일 ~ 12월 18일 토요일>까지 가능하오며, 관련 내용 첨부드립니다.
POP(594mm X 280mm)는 금요일까지 준비해주시면 되구요~
기타 사은품 등은 자유롭게 준비해주시면 됩니다!
참여의사 메일 주시면 도서 주문 넣겠습니다.
날이 많이 춥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얼떨떨한 마음으로 당연히 주신 기회를 받겠다고 답장했다. 조심스럼게 굿즈는 얼마나 준비하면 좋을지와 매대 '차림비'가 얼마인지 이메일 답장으로 여쭤보았다. 다시 얼마 있다가 답이 왔다.
제목 : Re: [교보문고영등포점] 내책내소 (심정우 드림)
내용 :
안녕하세요 작가님~
굿즈 보통 출판사마다 다른데,
내책내소 때문에 제작하는 경우에는 30개 정도 제작해주시고,
남은 건 가져가셔서 다른 행사 때 많이 사용해주시더라고요!
1. 선착순 느낌으로 최소는 10개였습니다.
2. 비용은 일절 없습니다. ^0^
문의사항 있으시면 문자 주세요~
빠르게 답변드리겠습니다.
교보문고 영등포점에서 하는 #내책내소라는 코너는'도서 3종 미만 출간 작가'만 지원할 수 있었다. 애초에 작가 이름이 곧 보증수표인 베스트셀러 라이터가 아닌 초보 저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이었던 셈이다.
'비용은 일절 없습니다. ^0^'. 이 2번 문항 글을 읽고 '그동안 혼자 뭐 한 거지?' 하는 자괴감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유명세도, 그럴싸한 굿즈도 필수 요건이 아닌 좋은 기회를 눈앞에 두고 나 혼자 공구리 치고 벽돌을 쌓아가며 심리적 허들을 높이고 있었던 거다.
자존감을 사과처럼 혼자 깎아먹고 있었던 지난 1주일여 시간 동안 인스타그램에 신세한탄을 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느꼈다. 될 사람, 안 될 사람이 정해진 게 아니라 될 일, 안 될 일이 있는 것뿐이었을 텐데.
(다음 편에서 계속 / * 정어리 인스타그램(@sardine.jw)에서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영업 일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같이 있고 싶다가도 혼자 있고 싶어>(정어리 지음, 동양북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편으론 반가운 사람. 사람을 만나기 전부터 집에 가고 싶은 사람.
'법정 혼자 시간'을 제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향인이라면 100% 공감할 자기 탐구서입니다.
* YES24 인간관계 부문 TOP 100 9주, 교보문고 MD의 선택, 영풍문고 종로 본점 자기 계발 베스트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