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고 깊은 나의 인간관계

내향인의 단점을 극복하는 방법 ④

by 정어리

내향인의 인간관계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형이다. 혼자인 생활에 익숙하다. 인간관계를 의욕적으로 넓히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굳이 사람들과 연락해서 만나는 일에도 수동적이다. 마당발 외향인이 부럽지만 따라 하고 싶지는 않다. 온갖 모임과 약속에 빠지지 않고 자주 연락하며 인맥을 유지하는 일이 어렵다. 그러나 내향인도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와 ‘함께’의 균형이 무너지면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감을 느끼게 된다.




만나야 행복하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다른 사람과 함께하라. 내향인에게는 절망적인 이야기이지만, 외향성은 행복의 핵심요소다. 한 연구에서 상위 10%의 행복한 사람들과 하위 10%의 불행한 사람들을 분석했다. 행복한 그룹은 상대적으로 외향성과 정서 안정성이 월등하게 높았다. 또한, 사회적 관계를 맺는 빈도가 높고 만족감이 높았다. 이는 사회성이야말로 돈과 외모를 뛰어넘는 행복의 필요조건임을 의미한다. 이 실험에서 운동을 얼마나 하는지, 종교활동을 한지 아닌지는 큰 상관이 없었다. 심지어 돈과 외모보다도 좋은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외향성이 중요했다.(Diener, Ed Seligman, Martin E. P. 2002)


내향인은 행복해지기 위해 혼자 있으려 한다. 사람에 시달리다가 텅 빈 집에 오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내향인이 혼자 있고 싶은 이유는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함께 있는 상황에 사회적 스트레스를 느끼기 때문이다. 복잡한 관계와 자극으로부터의 도피는 꼭 필요하다. 그러나 사회적 고립이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외향성이 행복과 깊은 관련이 있는 이유는 외향적일수록 사회성이 높기 때문이다.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서은국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사회적 경험이 인간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식물에 있어 광합성만큼 중요하다.”(서은국, 2014) 사회적 시간이 많을수록 행복하다는 사실은 거의 진리에 가깝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알고 지내야 행복할까? ‘던바의 수’라는 개념이 있다. 인류학자 로빈 던바가 조사한 결과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사회적 관계의 최대치가 150명이라는 뜻이다.(강준만, 2014) 이는 최대치를 의미한다. 누군가의 죽음에 애도할만한 인맥의 수는 평균 12명으로 급격하게 감소한다. 단지 아는 사이가 아니라 친해지려면 그만큼 에너지가 필요하다. 절친한 사이를 유지할 수 있는 인맥은 10명에서 15명이 넘으면 부담스럽다. 즉, 15명이 현실적인 한계 인원이다.(맬컴 글래드웰, 2000) 적어도 행복에 관해서라면 수십 명에서 수십만 명의 SNS 인맥보다는 현실 친구가 훨씬 힘이 된다.


pexels-freestocksorg-160322.jpg (출처 : Pexels.com)


건강한 관계가 건강한 사람을 만든다. 내향인은 소수와 맺는 긴밀한 관계가 주는 충만함의 가치를 안다. 사람은 적은데 기대하는 역할은 많다면 문제가 된다. 음악 취향이 통하는 사람이더라도 영화나 독서 취향은 다를 수 있다. 상대와 취향과 가치관이 다름을 서로 존중하는 관계가 건강하다. 사소한 어긋남에 ‘알고 보니 소울메이트가 아니었다’라며 서운함을 느낄 필요가 없다.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역할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볼 일이다. 이런 문제점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내향인은 인간관계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사람과 교류하며 인간관계를 다채롭고 풍성하게 만들자.




어떻게, 어디서 만나야 하는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자신이 잘 안다. 아무리 사람이 행복의 필요조건이라 한들 내향인에게는 스트레스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람 그 자체가 목적인 곳보다는 취미를 공유하는 모임을 추천한다. 친구 만들기나 친목 도모가 주목적인 곳에서는 뚜렷한 활동이 없다. 외향인은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적응하고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인 상황을 즐긴다. 내향인은 주변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을 지켜보며 괴로움을 느낀다. 이런 모임은 내향인에게는 친목을 가장한 사회적 지옥이나 다름없다. 낯선 환경에 거리낌 없이 자신을 드러내기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Matheus Bertelli 님의 사진, 출처 Pexels.jpg (Matheus Bertelli 님의 사진, 출처: Pexels)


과거의 자신을 떠올려보자. 교실 뒤에서 여러 명이 모여서 떠드는 대화에 자신 있게 끼어드는 유형이었는가? 아니면 혼자 책을 보거나 그림을 그리는 친구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유형이었는가? 내향인은 사람이 많을수록 스트레스를 받기 쉽다. 따라서 사람과 부대낄 자신이 없다면 인원이 많은 모임은 피해야 한다. 이왕이면 당신의 내향성이 환영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라. ‘이곳이 최선인가?’하고 자문해보자. 외향적일수록 유리한 모임에서 굳이 활동할 필요가 없다. 초보자가 쉬운 난이도로 게임을 시작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본인이 원한다면 괜찮다. 그러나 수십 명이 어울리는 파티는 누군가에겐 사회적 자살행위가 될 수도 있다.


내향인은 인간관계의 황금기가 학창시절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어째서 학생 때처럼 친구를 사귀기 어려운 걸까? 첫째는 소속감을 느낄 곳이 회사 말고는 없다. 둘째로 물리적 근접성을 잃었다. 하루 대부분을 같이 보내며 가깝게 사는 이는 회사 사람뿐이다. 세 번째는 활동이 제로다. 축구를 하든 소설이나 만화책을 돌려보든지 함께 할 사람이 없다. 과거에는 이 3가지 조건이 단단한 우정을 만들어주었다. 우스갯소리로 “사회에 찌들어버려서 더는 예전처럼 순수하게 사람을 만날 수 없다.”라고 한다. 인간관계가 정체된 이유는 생활환경과 라이프스타일의 문제에 더 가깝다. 마음이 찌들었다기보다는 사람이 불편하고 두려운 이유가 더 크다.


모임이 익숙하지 않은 내향인이라면 정적인 모임을 권하고 싶다. 예를 들어 취미가 독서라면 다양한 독서 모임에 참석해보자. 사회성이 필요한 정도에 따라 순한 맛부터 매운맛까지 조절할 수 있다. 가장 순한 맛은 묵독 모임이다. 말없이 책만 읽으면 된다. 대화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면 소규모 독서 모임에도 나가보자. 사회자가 있는 모임은 대화를 주도해야 하는 부담이 없어서 좋다. 비정기적으로 모이거나 일회성 모임이어도 괜찮다.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면 된다. 때로는 직접 모임을 열고 발제도 해보자. 내가 좋아하는 활동을 하며 편안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인간관계를 넓힐 수 있다.




균형감각과 거리조절

사람과의 관계에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길고 무거운 물건을 다른 사람과 함께 들어 올리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친해지는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모르는 사이(0단계)-안면만 있는 사이(1단계)-짧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2단계)…. 이렇게 단계별로 할 수 있는 행동이 있다. 서로 대화라도 하는 정도의 친분은 두 명 모두 1단계에 올라왔을 때 가능하다. 한 명은 1층 밑에 있는 상태에서 물건을 들어 올리면 균형이 무너진다. 안면만 있는 사이에서 바로 2단계를 건너뛰고 말할 수가 없다. 친하지 않은 사람이 갑자기 함께 무언가를 하자고 하면 부담스럽다.


‘일-집-일-집…’을 반복하는 직장인은 인간관계에 대한 감을 잃기 쉽다. 물론 좋은 사람은 어디에든 있고 어디서나 친분을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관계와 사적인 인간관계는 다르다. 사회생활 차원에서 서로 차리는 예의를 친분이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단지 사회생활을 하는 중일 뿐이다. 후배들이 인간적으로 나를 좋아해서 잘 따르는 게 아니다. 회사 생활을 하는 것이다. 회사 사람이 인간관계의 전부라면 퇴근 후와 주말에는 회사와 거리를 두자. 취미든 자기계발이든 회사 밖에서 만나라. 회사는 일한 만큼 월급을 주지 친구나 애인을 보장해주는 곳은 아니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의 일부를 인간관계 확장을 위한 시도에 투자하라.


Julia Volk 님의 사진, 출처 Pexels.jpg (Julia Volk 님의 사진, 출처: Pexels)


혼자여도 너무 괜찮아서 문제다. 지금은 혼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대다. 혼밥, 혼영은 기본이고 헬스, 수영, 달리기 같은 운동도 문제없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어색하지 않고 마음 편하기까지 하니 단점이 거의 없다. 조금 외롭지만, 나머지 모든 점이 내향인에게는 장점이다. 자신의 삶에 사람을 받아들이는 일은 수많은 장점을 포기해야 가능하다. 그런데도 현재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생긴 이유는 뭘까. 이제는 사람을 만나도 괜찮다는 신호다. 혼자 또는 함께 보내는 시간의 적정 비율은 사람마다 다르다. 7:3? 5:5? 어느 한쪽이 0 또는 10인 극단 값만 아니라면 지금보다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


저절로 유지되는 인간관계는 없다. 오랫동안 교류하는 사람들을 보면 주기적으로 약속을 잡고 만난다는 공통점이 있다. 때가 되면 전화해서 안부를 묻고 시간을 내서 약속을 잡는다. 거리가 멀어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법을 안다. 내향인은 먼저 만나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연락하라는 말을 들어도 하지 않는다.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다. 굳이 보지 않아도 괜찮아서다. 연락했다가 실제로 봐야 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은 이유도 있다. 이런 회피 성향을 극복하지 못하면 영원히 혼자다. 먼저 연락하라. 전화가 부담스러우면 가끔 메시지를 보내서 잡담을 나눠라. 거창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게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일이고 누구나 할 수 있다.




저녁 시간에 번화가를 걷다가 식당과 카페를 가득 채운 사람들을 봤다. 삼삼오오 모여서 떠드는 유리창 속 사람들의 모습이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다. 혼자인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면 무리 짓는 방법을 잊어버린다. 스스로 혼자의 삶을 선택했다고 영원히 혼자 살아야 하는 게 아니다. 사람을 만나고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다. 우리와 관심사가 비슷하거나 잘 통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반드시 있다. 먼저 주변에서부터 찾아라. 용기 내서 모임에 나가라. 삶의 일부를 타인에게 내줘라. 좋은 사람과는 공들여 관계를 유지하라.



참고문헌 및 참고자료

Diener, E., & Seligman, M. E. P. (2002). Very happy people. Psychological Science, 13(1), 81–84.

서은국. (2014). 행복의 기원(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생존과 번식 행복은 진화의 산물이다)(pp.138-140). 21세기북스

강준만. (2014). 감정독재(44. 던바의 수). 인물과사상사. URL: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176186&cid=51065&categoryId=51065

맬컴 글래드웰, (2000). 티핑포인트: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뜨게 되는가?(pp.219-220). 이끌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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