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어리 May 15. 2022

그래, 이래야 결혼식답지

비로소 돌아온 우리네 결혼식 문화

“(여긴) 왜 왔어?”

“(후배인 A 씨가) 오라고 해서요.”

“(그와는) 무슨 관계야?”


회사 사람 결혼식에 갔다가 졸지에 아침 드라마 등장인물이 되어버렸다. “생전 고인과의 관계는 어땠습니까?”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왔죠?” 대략 이런 질문을 받고 상대를 노려보는 장면이 생각났다. 여기는 장례식장도 아니니 비교적 동요 없이 선배에게 대답했다. 신랑과는 과거 같은 본부에서 일하며 가끔 담배를 피울 때마다 마주치던 사이라고. 그다지 접점 없는 사람의 결혼식장에 온 나를 보고 선배는 인지 부조화가 왔나 보다.


실은 ‘오라고 했으니 왔다.’는 대답은 당사자가 듣기에는 다소 마지못해 왔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어 조심스럽다. 그저 하고 싶었던 말은, ‘부름에 응답했다.’ 정도의 뉘앙스였다. 소년만화에서 용사가 “나의 부름에 응하라.”라는 말을 듣는 ‘소환수’나 ‘검’이 가질법한 비장함은 부조금 다음으로 챙겨가려고 항상 의식하는 편이다. 설령 축의금 테이블 옆에 부모님과 나란히 선 신랑을 마주했을 때 “축하드려요.” 외에 호들갑 떨며 전할 말이 없을 정도로 그저 그런 사이라고 해도, 예의상 주고받은 청첩장이라 해도.


날짜와 장소가 적힌 청첩장을 받는 일은 해가 갈수록 많은 의미로 다가온다. 그가 내게 청첩장을 건네주었을 , 나는 그의 식장에 가서 하객이 된다.   하객이 되기로 결심한 이상 최선을 다하자는 주의다. 수개월 동안 착실히 준비한  사람의 의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심전력으로 ‘본다.’ 박수도 열심히 치고 마음을 다해 축하한다. 가능하면 자리에 함께하는 모두가 딴짓하지 않고 집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매번 결혼식에  때마다 나의 소망은 여지없이 박살이 난다.


두 사람의 결혼을 증인으로서 제대로 지켜본다. 집에서 가족과 영화를 볼 때 깜빡한 집안일이 생각난다고 해서 갑자기 싱크대로 가서 설거지하지 않는 것처럼 지극히 기초적인 에티켓이다. 영화는 일시 정지나 뒤로 가기를 할 수라도 있다.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남의 집안 결혼식을 사람들은 무슨 정신으로 구태여 보러 와서 훼방을 놓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하객들이 자주 저지르는 행동이자 나의 실망 포인트는 두 가지다.


첫째, 주인공이 주인공인 줄을 모른다. 결혼식의 주연은 혼인을 서약하는 그들이지 내가 아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조연이나 엑스트라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홀 안에는 신부와 신랑을 마치 그들이 보는 유튜브나 영화 속 주인공으로 치부하는 군상들이 널려 있다. 영상을 보면서는 누구나 친구와 이야기할 수도 있고 스마트폰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 남의 결혼식에 갔다면 정면을 주시하고 지방 방송은 껐으면 좋겠다. 아무리 주례 선생님 말씀이 재미없더라도 말이다.


둘째, 죄책감이 없다. 연극이나 공연에는 인터미션이 있다. TV 쇼도 중간광고가 나올 때야 방청객들이 자연스럽게 쉴 수 있다. 그 외의 타이밍에 갑자기 일어나거나 자리를 소란하게 만드는 일은 민폐다. 그러나 오직 결혼식에서만큼은 누구나 거리낌 없이 일어나 밥을 먹으러 가거나 답답하다고 나간다. 화촉을 밝힐 때부터 이미 사람들은 3초에 한 번씩 출입문을 들락거리며 쾅쾅 소리를 낸다. “아이 씨…” 만약 여기가 극장이라면 삼세번도 지나지 않았을 때 누군가 쌍욕을 바로 했을 거다. 해결책은 영화관을 벤치마킹하는 수밖에 없다. 무대 바로 옆에 출입문을 한 개만 내어야만 그제야 사람들은 미안한 줄을 알고 얌전히 자리를 지킬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얼굴 위 부직포 한 장만 제외하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우리네 결혼식 문화는 마치 영화 ‘어벤저스’에서 타노스의 핑거 스냅*에서 되살아난 악당처럼 반가우면서도 징그럽다. 안녕(So long), 격식과 예의가 존재했던 날들이여. 양가 어르신만 모시고 간결하게 식을 올리던 충만한 기쁨의 시절이여. 은행 전산망으로 검증된 축하의 진심만을 전하던 낭만과 정숙의 나날들이여.




* 타노스의 핑거 스냅 : 마블 영화에서 타노스가 인피니티 건틀릿을 끼고 6가지 인피니티 스톤을 모두 장착한 상태에서 손가락을 튕기는 동작으로 당사자가 원하는 걸 실현할 수 있다. 타노스는 핑거 스냅으로 우주 생명체의 절반을 사라지게 했다.




* 커버 이미지 출처 : https://www.reddit.com/r/marvelstudios/comments/c00fja/this_photo_from_my_sisters_wedding_went_viral/


매거진의 이전글 본인 서른일곱에 뭐 하셨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