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사의의 종말과 사랑의 종말, 반복되는 주인공의 삶
매일 그렇듯 무기력하고도 차분하게 자신의 하루를 시작하는 남자. 그는 넓은 공간에서 홀로 작고 좁은 공간에 자리 잡는다. 집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슈퍼마켓과 식당 그 어디를 가도 주변 사람들은 비이상적으로 행복하다. 각 장소에서 남녀 직원들이 포옹을 하거나 격렬하게 사랑을 주고받기도 한다. 자신을 둘러싼 이런 광적인 열기가 차를 몰고 와 그를 덮치고 그는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 내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유난히 사랑을 한다. 나는 고독하고 외롭고 혼자다. 혼자일수록 주변의 행복에 경멸을 느낀다. 나만 빼고 온 세상이 주인공이다.
같은 장소에서 일어나니 이번에는 침대 옆에서 나를 깨워주는 연인이 있다. 화창한 나날에 둘의 행복은 온전히 보장받는다. 반대로 주변의 연인들은 이번에는 싸우기 바쁘다. 비이상적인 광기는 둘 사이의 행복에 잠시 쉼표를 건넬 정도로 지독하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 둘은 이 세계의 주인공이고 서로 가장 빛나고 있다. 이번에도 그는 주변의 광기에 쓰러진다. 다시 일어났을 때에는 그가 두 명이다. 지금의 그는 우울한 조연일까, 행복한 주인공일까?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이야기는 멈춘다.
친구(FRIENDS)인 척하는 사이에서도 서로의 관계는 이미 무르익었다. 그 상황을 끊어내고(END)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 순간 나를 둘러싼 세상이 달라지고 나를 지배하던 공기도 바뀌는 것이다. 혼자일 때는 쓸쓸하다. 나를 뺀 나머지는 다 행복해 보인다. 세상 속에서 나는 외롭게 단절되고 그들의 감정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다 누군가를 친구로 만나게 되고 그 사람의 좋은 점을 알아가며 사랑의 마음이 싹 튼다. 그 사람의 기호에 나를 맞추고 서로 종속적인 관계가 되며, 친구가 끝나고(END) 연인이 된다. 그 사람과 함께인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 오히려 나의 이런 행복한 사랑을 하지 못하는 세상이 가엾고 안 좋아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결국 나도 다시 그 관계가 끝나면(END) 혼자로 돌아간다. 세상은 그런 일상의 반복이고 우리의 감정도 자연스럽게 오르기도 내려가기도 하는 것이다.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나를 흥분하게 만드는 그 사람은 친구다. 외로웠던 나를 지켜주던 존재다. 친구 사이에서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고 부정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둘은 서로 너무 가깝고 속도를 늦추지도 않는다. 친구라는 선만 넘는 순간 둘의 관계는 온전히 하나가 된다. 사랑한다고 하지 않았다. 둘은 그 친구라는 관계를 끝내고 서로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것이다.
작년 발매했던 EP <Layover> 이후 깜짝 공개한 뷔(V)의 디지털 싱글 FRIENDS는 전작의 부드러운 알앤비 무드를 이어가는 트랙이다. <Layover> 발매 이전에 작업했다는 이번 곡은 사랑을 고백하는 트랙 Love Me Again과 비슷하면서도 사실은 좀 더 간접적이다. 사랑한다는 말 대신에 친구 사이의 관계에서 벗어나자는 조금 더 간지러우면서 몽글한 감성을 전달한다. 벚꽃이 피어나고 나무에 잎이 자라나는 봄에 서로의 사랑을 피우자는 느낌이 든다. 무게를 덜어내고 본인의 톤을 이어가는 그의 영리함에 감탄한다. 원곡보다 라이브 버전이 더 좋다는 뷔의 보컬은 역시나 이번 곡에서도 중저음이 참 안정적이고 부드럽다. 미니멀한 멜로디에 또렷한 완급조절은 가사 하나하나가 귀에 오롯이 전달될 정도다. 군백기가 너무 안타깝지만 기다려야 한다. FRIENDS를 통해 뷔는 팬들에게 잠시 헤어지고 떠나지만 언젠가 다시 만나 친구처럼 서로 웃고 더 돈독한 관계가 될 것이라고 안심시켜주는 것 아닐까.
뮤직비디오 이야기를 전하는 화자의 주변에는 사랑하는 연인들이 가득 자리를 채우고 있다. 그 사랑은 의미 자체에 꽤나 본질적이고 우리의 좁은 시야를 넓힌다. 연인 사이는 화자의 또래부터 중년, 노년까지 모든 연령대가 있다. 단순히 남녀 관계만도 아니고 남자와 남자 그리고 여자와 여자 간의 사랑도 당연히 우리 주변 가까이에 있다. 인종이 다르더라도, 성별이 같거나 다르더라도, 나이가 너무 차이가 나더라도 사랑은 오롯이 그 주체인 둘을 행복하게 만드는 존재다. 오히려 그런 부차적인 요소들이 그 사이를 방해한다면 둘 다 주인공이 될 수 없다. 그런 사이를 우리가 비난하고 헐뜯을 이유도 근거도 전혀 없다. 사랑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고 서로 바라보면서 행복하면 된다. 그렇지만 연인 사이에서 주인공이 하나이고 다른 한 사람은 조연이라면 그 관계는 오래갈 수 없다. 주인공과 조연을 둘러싼 오해는 이후 질투나 일방적인 사랑으로 어느 하나가 지치기 마련이다. 친구가 아닌 이상 그 둘은 각자 행복하려면 서로에게 더 잘 해주는 관계를 이어갈 것이다.
떠나간 사람에 대한 외로움, 혼자인 것에 대한 공허함은 어쩔 수 없지만 건강한 고독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나 혼자 사는 이 세상에서 스스로 행복하다면 주인공은 한 명만 있어도 되니까. 비교하지 않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행복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고, 내 것이 아니라면 축복해 주면 그만이다. 질투할 필요도 없다. 그 사람들은 당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그들에게 당신은 엑스트라 아니면 그 이하의 대상도 아니다.
* 하단 링크를 통해 제 볼로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