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에세이스트의 기록
2050년, 나는 이 침묵의 시대를 기록하는 에세이스트다. 그날 저녁, TV에서 노인을 대상으로 한 증오 범죄 뉴스를 본 후 나는 펜을 들었다. ‘어쩌다 우리는 서로를 이토록 증오하게 되었는가.’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나의 기록은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했다.
2050년의 대한민국은 거대한 요양 도시와 같다. 모든 경제는 성장이 아닌 ‘유지’와 ‘관리’에만 집중되고, 내 월급의 40% 이상은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위한 ‘통합사회 부양세’로 사라진다. 이것은 연대가 아닌, 시스템에 의한 강제적인 생명력 이전이다. 우리는 서로를 비용으로 여기며 투명 인간처럼 스쳐 지나간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치매 안심 센터가 되었고, 청년들의 공간과 기억은 도시에서 체계적으로 지워졌다.
이 잿빛 침묵은 25년 전, 2025년의 요란했던 소음 속에서 태어났다. 그 시절을 지배한 단 하나의 감정은 ‘불안’이었다. 폭등하는 집값에 미래를 저당 잡히는 ‘영끌’과 불안정한 일자리는 청년들을 각자도생의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출산은 감당 불가능한 리스크가 되었고, 세대 갈등은 온라인과 가족 식탁을 전쟁터로 만들었다.
합계출산율 0.68명이라는 기록적인 경고음이 울렸지만, 우리는 나라의 미래보다 당장 내일의 생존이 더 절박했다. 모두가 침몰하는 배 위에서 비명을 질렀지만, 누구도 함께 구멍을 막으려 하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외면했다. “다음 세대가 기꺼이 아이를 낳아 뿌리내리고 싶은 사회란, 과연 어떤 모습인가?”
그래서 2055년의 나는, 도시의 유령이 되어 이 모든 실패를 기록한다. 나의 글이 세상을 바꾸진 못할 것이다. 다만 이 기록이 먼지처럼 떠돌다 어느 날 한 젊은 영혼의 창가에 내려앉아, 우리가 묻지 못했던 새로운 질문의 씨앗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