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피어나는 장미
장미는 늦은 밤, 잠들지 못하고 옅은 신음 소리만 내뱉고 있었다. 통증 때문만은 아니었다. 닫힌 병실 문틈으로, 부모님의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가 희미하게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단어들은 뭉개져 들리지 않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의 결은 칼날처럼 날카롭게 느껴졌다. 어머니의 절박한 애원과 아버지의 지친 한숨. 그녀는 자신이 부모님의 삶에 올려놓은 이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며, 죄인처럼 눈을 감았다. 그들의 다툼을 멈추게 하기 위해, 내일은 아프지 않은 척, 괜찮은 척 연기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픈 사람이 오히려 가족의 감정을 돌봐야 하는 이 기막힌 역할 전도가, 그녀가 짊어진 또 하나의 짐이었다.
병원 밖 복도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림자처럼 서서 조용히 다투었다.
“여보, 의사가 비급여 항목이라도 쓰는 게 좋다고 하잖아. 면역력에 좋다는 주사라는데, 뭐라도 해봐야지. 애가 저렇게 말라가는데… 내 적금이라도 깨야겠어요.”
“그 돈으로 이게 해결될 문제 같아? 원래 이런 건 남편인 민 서방이 나서서 결정해야 하는데, 상의 한번 제대로 할 수가 없으니… 지금은 시작일 뿐이야. 앞으로 돈 들어갈 일이 산더미일 텐데. 우리만 생각할 수도 없고, 지혜 학비는… 현실적으로 생각해야지.”
“현실? 지금 내 딸이 죽어가는데 현실이 뭐가 중요해!”
어머니의 목소리가 격해졌다. 아버지는 아내를 마주 보지 못했다. 그의 침묵은 무정함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버텨내야 한다는 가장의 책임감, 하지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아비의 무력감이 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동생 유진은 늦은 밤 근무를 마치고 텅 빈 간호사 휴게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선배 간호사가 들어와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너 요즘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안 그래도 힘든데, 언니 일까지… 그러다 너 먼저 쓰러져.”
“괜찮아요, 선배님.”
유진은 애써 웃어 보였지만, 선배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결국 무너져 내렸다.
“솔직히… 너무 힘들어요. 환자들한테는 강한 척, 언니랑 가족들 앞에서도 괜찮은 척… 정작 나는 어디 가서 울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언니 팔에 IV 라인 잡을 때마다 내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가끔은, 정말 끔찍하지만, 언니가 원망스러워요. 왜 우리 언니여야만 했을까. 왜 내가 강한 척 버텨야 하는 걸까. 나도 그냥 예전처럼 언니한테 기대고 투정 부리고 싶어요.”
하얀 가운 아래, 그녀는 가장의 무게와 동생의 슬픔, 그리고 간호사의 죄책감과 인간적인 원망까지 위태롭게 짊어지고 있었다.
그 주 주말, 병실은 잠시나마 소란스러운 활기로 채워졌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지혜의 손을 잡고 병문안을 온 것이다.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밝고 희망찬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우리 지혜, 어제 받아쓰기 100점 맞았어! 장하다, 우리 강아지.”
“옆 병실에 있던 환자는 완치 판정받고 퇴원했대. 너도 곧 그렇게 될 거야.”
장미가 항암 부작용으로 입맛이 없다고 하자, 어머니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약한 소리 하는 거 아니야. 마음을 굳게 먹어야 병을 이기지.”
그들의 선의는 장미에게 보이지 않는 족쇄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고통과 불안을 숨긴 채,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괜찮다고 웃어야 했다. 그 강요된 긍정성의 벽 앞에서 그녀는 완벽히 혼자였다.
가족들이 돌아간 후, 어머니는 그날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지혜를 데리고 공원에 갔지만, 아이는 내내 스케치북에만 몰두했다. 저녁 무렵, 장미에게 전화를 걸어 밝은 목소리로 딸의 안부를 전한 어머니는, 전화를 끊고 몰래 지혜의 스케치북을 펼쳐 보았다.
그림 속에는 온 가족이 손을 잡고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그리고 지혜. 하지만 엄마가 있어야 할 자리는, 마치 날카로운 칼로 도려낸 것처럼 공허했다. 대신, 그림 한구석에, 침대에 누워있는 작은 사람 주변으로 온통 검은색 크레파스가 거칠게 칠해져 있었다. 마치 분노가 담긴 검은 비가 내리는 것처럼, 종이가 찢어질 듯한 힘으로 눌러 그린 흔적이 역력했다.
어머니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아이는 이미 모든 것을 느끼고 있었다. 엄마의 부재, 집안에 감도는 슬픔, 어른들의 불안을. 어머니는 스케치북을 덮어 가방 깊숙이 숨겼다. 장미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장미의 고통은 보이지 않는 파문이 되어, 이제는 가장 작고 여린 지혜의 마음에까지 검은 얼룩을 남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