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5천만원의 무게
피해자들의 동의를 얻었지만, 막상 윤호를 찾아 나서는 길은 막막했다. 그는 이미 유령 같은 존재였다. 지우에게 남긴 연락처는 모두 끊겼고,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 며칠을 헤맨 끝에, 지우는 마지막 희망으로 윤호와 유독 가까웠던 대학 선배 '현석'을 찾아갔다. 그의 냉담한 반응에 지우는 마지막 힘을 쥐어짰다.
"선배님. 사람이 죽었습니다. 자기 딸한테 2층 침대 사주고 싶다던 평범한 아버지가요. 저는 선배님께 피해를 드리려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사람을 찾아야만 합니다."
지우의 절박한 목소리에 현석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사실… 얼마 전에 연락이 한 번 왔었어요. 마지막으로 밥이라도 한 끼 먹자고. 솔직히… 저도 엮이기 싫어서 안 나갔습니다. 근데 영 마음이 좀 그렇네요."
현석의 눈빛에는 죄책감과 안타까움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애써 외면했던 윤호의 마지막 부탁이 떠올랐는지,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자기가 '신림동에 작은 창고를 얻어서 지낸다'고 했어요. 아마 그 근처 어딘가일 겁니다. 더는 모릅니다."
지우는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사무실을 뛰쳐나왔다. 그는 곧장 신림동의 창고 밀집 지역으로 향했다. 해가 저물고, 낡은 창고들 사이로 음습한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지우는 한쪽 구석에 몸을 숨기고 기약 없는 기다림을 시작했다.
첫날 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는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이튿날에는 비까지 내렸다. 그는 작은 처마 밑에서 덜덜 떨며 빗물이 밴 빵으로 끼니를 때웠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수십 번도 더 고개를 들었다. 그는 주머니 속 휴대폰을 꺼내 솜이의 사진을 보았다. 그리고 '햇살가득'님의 프로필 사진 속 환하게 웃는 어린 딸의 얼굴을 보았다. 지우는 다시 주먹을 꽉 쥐었다. '더 이상 누군가 혼자서 무너지게 두지 않겠다.' 그 다짐만이 그의 심장을 뛰게 했다.
그렇게 사흘째 되던 날 저녁이었다.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전부 가린 한 남자가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지우의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남자가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왔을 때, 지우는 그의 앞을 막아섰다.
"선배, 저예요. 지우."
윤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그는 들고 있던 담배를 내던지고 골목길 안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지우는 주저 없이 그를 쫓았다. 막다른 길에 다다라서야, 윤호는 숨을 헐떡이며 벽에 기댄 채 주저앉았다. 그의 모습은 지우가 알던 자신감 넘치던 선배가 아니었다. 모든 것을 잃고 쫓기는 자의 초라한 그림자만이 남아 있었다. 지우는 그의 팔을 꽉 붙잡았다. 분노로 떨리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