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5천만원의 무게
다음 재판 기일, 증인으로 호명된 것은 지우였다. 증인석으로 걸어 나가던 그의 걸음이 잠시 멈췄다. 방청석 한가운데, '햇살가득'님의 아내와 어린 딸이 앉아 있었다. 딸은 아직 상황을 다 이해하지 못하는 듯,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 모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지우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 싸움은 더 이상 나만의 억울함을 푸는 자리가 아니었다. 남겨진 이들을 위한, 그리고 스러져간 이들을 위한 싸움이었다. 그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증인석에 섰다.
최 변호사는 지우를 향해 악의적인 미소를 지으며 질문을 던졌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이 지우를 흔들려는 듯했다.
"증인은 이 비극을 발판 삼아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고 싶은 숨은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닙니까?"
지우는 잠시 눈을 감았다. 분노로 들끓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단단한 목소리로 대답하기 위해 애썼다. 헛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진실만을 말하려 했다. 그는 다시 눈을 뜨고, 변호사가 아닌 재판장을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저는 영웅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집을 잃고, 꿈을 잃고, 평범한 일상을 송두리째 빼앗긴 피해자일 뿐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처음엔 작게 떨렸지만, 이내 단단하고 분명해졌다.
"저희가 잃어버린 것은 단순히 1억 5천만 원이 아닙니다. 저희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시간을 잃었고,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었고, 내일을 살아갈 희망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목숨까지 잃었습니다. 부디, 이 돈의 진짜 무게를 헤아려주시길 바랍니다. 이 숫자가 단순히 경제적 손실이 아닌, 누군가의 삶 전체가 담겨 있었다는 것을 알아주십시오."
지우의 증언이 끝나자 법정은 깊은 침묵에 휩싸였다. 그 침묵을 깬 것은 방청석에서 터져 나온 흐느낌이었다. 지우는 자리로 돌아오며 '햇살가득'님의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눈물 흘리며 그에게 아주 작게, 하지만 진심을 담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들의 눈빛은 서로에게 '고맙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