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블루스 1편 - Part19

1억 5천만원의 무게

by sarihana

6부: 또 다른 폭풍

19장. 돌아갈 곳


싸움이 끝난 뒤, 지우는 한참을 망설이다 고향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재판이 끝나고 받은 배상금의 일부를 봉투에 담았다. 그에게 배상금은 위로가 아니었다. 잃어버린 시간과 희망에 대한 보잘것없는 증명서였다. 부모님께는 차마 전화를 드릴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버스는 도시의 빌딩 숲을 지나 익숙한 시골 풍경으로 접어들었다. 낯선 곳에서 매일 마주하던 빌라들의 그림자 대신, 정겨운 논밭과 낮은 산들이 보였다. 차창 밖으로 부모님의 낡은 가게가 보였을 때, 그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드디어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함께, 그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저녁 식사가 끝난 어색한 침묵 속에서, 지우는 떨리는 손으로 돈 봉투를 꺼냈다. 봉투 안의 돈은 지우의 손 안에서 차갑게 느껴졌다. 그가 잃어버린 돈의 일부이자, 부모님의 전부였다.


"아버지, 어머니… 죄송해요. 이게… 전부입니다."


그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전세 사기를 당한 일, 사람들과 싸워온 지난 몇 달, 그리고 결국 부모님의 평생이 담긴 돈의 절반 이상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기어들어 갔고, 그의 등은 식탁 아래로 더욱 움츠러들었다. 질책을, 혹은 원망을 각오했다. 그들의 침묵은 그 어떤 꾸짖음보다 무겁고 두려웠다.


한참의 침묵 끝에, 그의 어깨 위로 투박한 아버지의 손이 올라왔다. 굳은살이 박힌 그 손은 무겁지만 따뜻했다.


"됐다. 고개 들어라."


지우가 천천히 고개를 들자, 아버지는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돈은 다시 벌면 된다. 근데 사람은… 잃으면 그걸로 끝이야. 너 하나 몸 성히 돌아왔으면, 그걸로 된 거다." 그 말은 지우의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다. 어머니는 말없이 그의 앞에 따뜻한 물 한 잔을 놓아주며 눈물을 훔쳤다. "고생했다, 우리 아들.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꼬."


그 순간, 지우의 가슴을 짓누르던 거대한 죄책감의 무게가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1억 5천만 원은 돈의 무게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를 믿어준 부모님의 사랑의 무게였고, 그 사랑은 돈을 잃었음에도 조금도 닳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다. 그는 그제야 소리 내어 울었다. 그는 비로소 자신이 잃어버린 모든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을 잃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어머니는 울고 있는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힘들었지? 그동안 얼마나 혼자 끙끙 앓았을까. 괜찮다, 이제. 엄마, 아빠 여기 있잖아." 그녀의 목소리에는 그동안 지우가 겪었던 모든 고통을 이해하고 감싸 안아주려는 깊은 사랑이 담겨 있었다.


지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모님의 품에 안겼다. 그의 눈물은 단순한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용서받았다는 안도감, 그리고 사랑받고 있다는 확인에서 오는 뜨거운 눈물이었다. 그는 1억 5천만 원을 잃었지만, 그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가족의 따뜻한 품을 되찾았다. 그의 싸움은 끝났지만, 그의 인생은 이제 다른 트랙에서 다시 시작될 터였다. 잃어버린 희망을 딛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 나서는 길이었다. 그가 다시 일어설 힘은, 잃어버린 돈이 아니라 잃지 않은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