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블루스 1편 - Part20

1억 5천만원의 무게

by sarihana

20장. 거품의 종말


서울로 돌아오고 계절이 한 번 바뀌었을 무렵, 지우는 낯선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친구, 민혁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예전의 자신감 넘치던 모습과는 달리 초조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며칠 뒤, 두 사람은 허름한 국밥집에서 마주 앉았다. 지우가 먼저 도착해 기다리자, 약속 시간이 조금 지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민혁의 모습이 보였다. 번쩍이던 고급 외제차도, 값비싼 명품 시계도, 화려한 구두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의 얼굴에는 깊은 절망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한참 동안 말없이 국밥만 뒤적이던 민혁이 씁쓸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정부에서 내놓은 '전세 대출 전면 규제'… 그게 직격탄이었어."


그는 수십 채의 아파트를 전세를 끼고 사들이는 '갭투자'로 자산을 불려왔다. 시장이 활황일 때는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갔다. 끝없이 오르는 집값은 그의 거품을 더욱 부풀렸다. 하지만 정부가 투기 자금의 통로로 지목된 전세 대출을 사실상 막아버리자, 시장은 하루아침에 얼어붙었다. 기존 세입자들이 일제히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아우성쳤지만, 집은 팔리지 않았고, 그는 수십억의 보증금을 돌려줄 능력이 없었다.


"모든 게 신기루였어. 내 돈인 줄 알았는데, 전부 빚이더라. 이젠 신용불량자에…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다."


지우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한때 느꼈던 분노나 원망 대신, 이상하게도 무감각에 가까운 서글픔이 밀려왔다. 민혁의 몰락은 그의 예견된 비극이었지만, 막상 마주하니 연민조차 쉽게 느껴지지 않았다.


민혁은 떨리는 손으로 소주잔을 기울였다. 마침내 그는 가장 하기 힘든 말을 꺼냈다.


"사람들이 날 보는 눈빛이, 예전에 내가 너를 보던 그 눈빛과 똑같더라. 멍청하고, 미련하고, 불쌍한 눈빛…." 그의 목소리가 물기에 젖어 있었다.


"지우야… 미안한데… 아주 조금이라도 빌려줄 수 있겠냐. 며칠째 밥을 못 먹어서."


지우는 대답 없이 자신의 낡은 지갑을 열었다. 그 안에는 그날 일해서 번 현금 몇 장이 전부였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그 돈을 전부 꺼내 민혁의 앞에 놓았다. 민혁은 테이블 위의 돈과 지우의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이내 국밥 그릇 위로 고개를 숙였다. 그의 어깨가 작게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은 1억 5천만 원의 거품을 잃은 자의 무력감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국밥집 문을 나설 때, 민혁은 끝내 지우의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짧게 중얼거렸다.


"…그때 네 말이 맞았는데."


그 말을 남기고 민혁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지우는 한때 다른 세상에 사는 것처럼 보였던 친구의 마지막 뒷모습을 보며, 그와 자신을 모두 집어삼킨 거대한 파도의 무서움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그 파도는 누군가를 집어삼키고, 또 다른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