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블루스 3편 - Part6

1억 5천만원의 무게

by sarihana

6장. 첫 삽을 뜨다


회의 이후, 보이지 않는 연대의 움직임은 더욱 대담하고 조직적으로 변했다. 대한민국 정책의 심장부인 '나라살림' 게시판에 올라온 익명의 글이 시발점이었다. '주거 안정은 비용이 아닌 복지 SOC(사회간접자본) 투자입니다' 라는 제목의 글은 박성준 국장의 논리를 완벽하게 해체하고, 내 제안의 사회경제적 당위성을 날카롭게 설파했다. 현직 관료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내부 데이터와 논리로 무장한 이 글은 순식간에 공무원 사회를 흔들었고, 주요 언론에 대서특필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이때, KCIJ 탐사보도팀의 박진영 기자가 이 사건을 본격적으로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의 기사는 단순한 정책 비판을 넘어, 숨겨진 관료 사회의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여론은 '세금 폭탄'이라는 프레임에서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프레임으로 서서히 옮겨가기 시작했다. TV 토론회에서는 내 보고서의 내용을 두고 찬반 논쟁이 벌어졌고, 시민단체들은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정치권에서도 내 프로젝트를 주목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대통령 비서실에서 직접 보고를 요청했다. 내 이름 석 자가, 그리고 내 보고서가 이 나라 정책의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된 것이다.


대통령 비서실 회의실, 거대한 테이블의 양 끝에 나와 박성준 국장이 마주 앉았다. 가운데에는 서늘한 표정의 국정기획수석이 앉아 있었다. 이것이 마지막 결전이었다. 공기마저 날카롭게 느껴지는 침묵 속에서, 박 국장이 먼저 최후의 카드를 꺼냈다. 그는 재정 파탄의 공포를 극대화하며, 비장한 목소리로 국가의 미래를 위해 무책임한 이상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의 논리는 단단했고, 그의 우려는 합리적으로 들렸다.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준비해온 수십 장의 PPT를 켜지 않았다. 대신, 내가 휴가를 내고 만났던 사람들의 흑백 사진 몇 장을 스크린에 띄웠다. 신림동 반지하의 만삭 아내를 둔 남편, 노량진 고시원의 지친 청년, 성수동에서 쫓겨나던 구둣방 할아버지.


"수석님, 저는 오늘 숫자를 말씀드리러 온 것이 아닙니다. 이분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러 왔습니다."


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그들의 절망을, 그리고 그들의 작은 희망을 담담하게 전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수석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집을 짓는 사업이 아닙니다. 이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미래 세대에게 어떤 나라를 물려줄 것인가에 대한 대통령님의 철학이 담기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숫자의 성장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보듬는 나라로 나아가야 합니다."


보고가 끝나고 길고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국정기획수석은 한참 동안 스크린 속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박 국장이 아닌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이 프로젝트, 대통령 직속 '미래주거전략위원회'를 신설하여 추진하겠습니다. 예산 문제, 부처 간의 이견, 이 모든 것은 위원회에서 직접 조율하겠습니다. 실패를 두려워 말고, 담대하게 추진해보세요. 김현우 주무관이 위원회의 첫 실무 총괄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그것은 기적과도 같은 결정이었다. 나의 제안은 박 국장이 제안했던 '100세대짜리 시범 사업'이 아닌, 대통령의 의지가 실린 국가적인 프로젝트로 격상된 것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박 국장의 차가운 시선이 더 이상 나를 흔들지 못했다.


1년 뒤, 가을.


나는 안전모를 쓴 채, 한때는 낡고 스산했던 신림동의 한 언덕 위에 서 있었다. 내 뒤로는 '도심 상생주택 1호, 그 첫 삽을 뜨다' 라고 적힌 거대한 현수막이 맑은 가을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착공식의 소음과 인파 속에서, 나는 저 멀리 언덕길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는 한 가족을 발견했다. 1년 전, 내가 만났던 반지하의 그 주민이었다. 그의 옆에선 아내가 갓 돌이 지난 아이의 손을 잡고 서 있었다. 그들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순간,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모르는 번호로 온 문자 메시지였다.


[첫 삽을 축하합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 J]


나는 답장을 보내는 대신,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가는 타워크레인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그렇다. 이것은 결코 끝이 아니었다. 수많은 저항과 현실의 벽이 앞으로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괜찮았다. 저 육중한 크레인이 파고 있는 것은 단순한 땅이 아니었다. 그것은 절망의 땅을 뚫고, 이 회색 도시의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희망의 첫 기둥을 올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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