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5천만원의 무게
5년의 시간이 흘렀다. ‘도심 상생주택’ 프로젝트는 세상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일을 현실로 만들었다. 서울의 낡은 달동네와 버려진 공장 부지에는 깨끗하고 안정적인 공공주택 단지가 숲처럼 들어섰다. 나는 이제 ‘김 주무관’이 아닌, 대통령 직속 ‘미래주거전략위원회’의 최연소 국장, ‘김현우 국장’으로 불렸다. 언론은 나를 ‘주거 안정의 설계자’라 칭송했고, 시사 주간지 표지에는 ‘대한민국의 주거 패러다임을 바꾼 인물’이라는 제목과 함께 어색하게 웃고 있는 내 얼굴이 실렸다.
성공은 달콤했지만, 나는 점차 그 이면의 씁쓸한 그림자를 마주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균열이었다. 위원회 보고서의 긍정적인 주거 공급률 데이터 옆에, 각주처럼 작게 붙어있는 통계 자료. ‘상생주택 신청 관련 소송 건수, 5년간 3,000% 폭증’.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성공에 따르는 작은 소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소음은 점점 커져갔다. 프로젝트는 역설적이게도 ‘성공’ 그 자체에서부터 뒤틀리기 시작했다. 상생주택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시세의 반값도 안 되는 가격, 쾌적한 환경, 안정된 주거. 입주 신청일이 되면 전국의 서버가 마비되었고, ‘상생 로또’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청약 점수를 높이기 위한 위장 이혼과 편법이 판을 쳤고, ‘상생주택 입주 컨설팅’이라는 신종 학원까지 등장했다. 우리는 집을 지었지만, 동시에 거대한 욕망의 투기장을 만든 셈이었다.
어느 주말, 나는 이 모든 성공의 시작점이었던 신림동 1호 단지를 몰래 찾아갔다. 깔끔하게 정비된 단지 안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안정된 삶의 여유가 묻어났다. 내 꿈이 실현된 풍경이었다. 하지만 단지를 한 걸음만 벗어나자, 나는 보이지 않던 괴물과 마주했다.
단지 경계에 세워진 투명한 방음벽. 그것은 소음을 막는 벽이 아니라, 세상을 가르는 거대한 '유리벽'처럼 보였다. 벽 너머, 상생주택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의 낡은 빌라들은 지난 5년간의 세월을 정통으로 맞은 듯 더욱 초라하고 음울했다. 동네 부동산 앞에 붙은 시세표를 보고 나는 숨을 멈췄다. 상생주택이 들어서며 주변의 전월세 가격은 오히려 폭등했고, 그들은 예전보다 더 혹독한 주거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국가가 만든 요새 안에서 보호받고, 다른 한쪽은 거친 시장의 칼바람에 내몰린 것이다. 그들의 눈빛 속에서 나는 선망이 아닌, 차가운 원망과 소외감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오랜 적수 박성준 국장이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는 이제 차기 경제수석으로 거론되는 거물이 되어 있었다. 그는 한 방송 토론회에 나와, 웃는 얼굴로 내 프로젝트의 심장을 찔렀다.
"김현우 국장님의 프로젝트, 훌륭합니다. 저도 일부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많은 분들이 좋은 집에 살게 되었죠. 하지만 우리는 더 큰 그림을 봐야 합니다. 이 성공이 어떤 대가를 치렀습니까? 민간 건설 시장은 고사 직전이고, 건강한 시장 경쟁은 사라졌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국가가 국민을 '선택받은 자'와 '버림받은 자'로 나누는 새로운 '주거 계급'을 만들었다는 겁니다. 노력으로 집을 사는 시대를 끝내고, 추첨 운에 모든 것을 맡기는 사회를 만든 것이 과연 옳은 일입니까? 이것은 평등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불평등일 뿐입니다."
그의 말은 뼈아픈 진실이었다. 나는 주거 문제를 해결하려다, 이 도시를 거대한 성채와 해자(垓子)로 나누어 버린 영주(領主)가 된 기분이었다.
그날 밤, 나는 익숙한 ‘J’의 번호로 먼저 전화를 걸었다. 이제는 편하게 만나는 사이가 된, 기재부의 한 동료였다. 그는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국장님, 우리는 괴물을 잡으려다, 더 무서운 괴물을 키운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를 위한 집을 짓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견고한 ‘성벽’을 쌓아버렸어요. 아름다운 구명보트를 만들었지만, 보트에 타지 못한 사람들은 이제 더 빨리 물에 빠져 죽게 생긴 겁니다."
전화를 끊고, 나는 남산 타워 전망대에 올랐다. 발아래, 서울의 야경이 별처럼 펼쳐져 있었다. 내가 만든 상생주택 단지들의 환한 불빛과, 그 빛이 닿지 않는 더 넓고 어두운 공간들이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집값이라는 괴물과 싸워 이겼다. 하지만 그 괴물의 시체 위에서, 도시는 이제 ‘계급’이라는 새로운 괴물을 잉태하고 있었다. 나의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일지도 몰랐다. 더 복잡하고, 더 고통스러운. 정답이 없는 싸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