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5천만원의 무게
나는 내가 만든 성공의 제단에서 스스로 걸어 내려왔다. 국정기획수석과의 마지막 독대 자리. 나는 성공적인 사업 성과가 담긴 보고서가 아닌, 내 정책이 만들어낸 ‘유리벽’과 ‘주거 계급’이라는 부작용을 분석한 반성문을 제출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미래주거전략위원회’의 해체를 건의했다.
수석은 침묵 속에서 한참 동안 보고서를 읽어 내려갔다. 그는 안경을 벗어 닦으며, 지친 목소리로 물었다. "김 국장, 자네는 제국을 건설했네. 그런데 이제 와서 스스로 그걸 무너뜨리겠다는 건가?"
"제국이 아니라 성벽을 쌓았습니다, 수석님. 이제는 성벽을 쌓는 일이 아니라, 성벽 사이의 길을 내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나는 ‘김 국장’이라는 빛나는 직함을 반납하고, '주거환경개선과'로의 발령을 자청했다. 나의 결정에 관료 사회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누군가는 ‘이해할 수 없는 좌천’이라며 수군거렸고, 박성준 수석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스스로 정책의 한계를 인정한 꼴’이라며 점잖게, 그러나 가장 아프게 나를 찔렀다. 언론은 ‘주거 영웅의 몰락’이라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뽑아냈다.
하지만 나는 괜찮았다. 더 이상 세상의 평가에 얽매이지 않기로 했다. 나의 새로운 사무실은 본관 건물이 아닌, 창고를 개조한 낡은 별관 구석에 있었다. 화려한 신도시나 거대 단지를 설계하는 곳이 아니었다. 도시의 가장 낡고 소외된 곳, 내가 만든 ‘유리벽’ 너머의 그림자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정책의 무덤'이라 불렀다.
나의 두 번째 프로젝트는 ‘첫 삽’을 뜨는 거창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미 지어진 것들을 '보듬는' 일에 가까웠다. 우리는 상생주택의 높은 벽 때문에 더욱 깊은 그늘에 잠긴 동네들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집을 짓는 대신, 마을을 되살리는 일을 시작했다.
일은 더디고 고됐다. 거대한 도면을 그리는 대신, 주민 한 명 한 명을 만나 그들의 진짜 필요가 무엇인지 듣고 기록했다. 낡은 빌라의 옥상 방수를 지원하고, 곰팡이 핀 반지하의 환기 시설을 교체해주고, 아이들이 사라진 골목에 작은 놀이터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수많은 오해와 불신에 부딪혔다. 한 주민 설명회에서는 격앙된 할머니가 내게 고함을 쳤다. "당신이 만든 저 삐까뻔쩍한 아파트 때문에 우리 동네는 햇빛도 안 들어와! 이제 와서 이런 푼돈으로 우리를 달래려고? 결국 우리 쫓아내고 여기도 아파트 지으려는 것 아니냐!"
나는 변명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그들의 날 선 목소리를 끝까지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그 다음 날도 그곳을 찾아갔다. 우리는 약속한 작은 것들을 하나씩, 느리지만 꾸준히 실행에 옮겼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1호 상생주택 단지 바로 옆 동네의 작은 골목길 축제에 초대받았다. 우리가 지원한 예산으로 열린 소박한 축제였다. 나는 구석에 서서 어색하게 뻥튀기를 씹으며 축제를 지켜보았다.
바로 그때, 내 눈에 한 장면이 들어왔다.
상생주택의 깨끗한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 몇 명이, 마치 국경을 넘듯 단지 밖으로 달려 나왔다. 그리고 낡은 빌라 골목에서 놀던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려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유리벽도, 주거 계급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 사이를 가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40년 된 구둣방을 지키던 할아버지. 그는 상생주택에 입주하지 못했지만, 우리 지원금으로 가게를 말끔하게 수리하고, 이제는 마을 아이들에게 구두를 닦는 법을 가르쳐주는 동네의 명물이 되어 있었다. 할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에는 내가 지난 몇 년간 그 어떤 정책 보고서에서도 보지 못했던, 깊고 평온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그 순간, 한 젊은 남자가 내게 다가와 따뜻한 믹스커피 한 잔을 건넸다. 낯이 익었지만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국장님, 아니, 이제는 팀장님이라고 불러야겠네요. 저 기억 못 하시겠지만, J 중 한 명이었습니다. 팀장님이 시작하신 이 길, 저희가 잊지 않고 이어가겠습니다."
그는 짧게 목례를 하고는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진정으로 만들어야 했던 것은 완벽한 ‘집’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의 삶을 공유하고 기댈 수 있는 ‘마을’이었다는 것을. 거대한 성공은 거대한 벽을 낳았지만, 작고 더딘 나의 새로운 일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허물어진 담벼락을 다시 쌓아 올리고 있었다.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J’에게서 온, 아마도 마지막이 될 문자였다.
[벽을 허무는 일은, 벽을 쌓는 일보다 더 어렵고 위대합니다. 국장님의 새로운 길을 응원합니다.]
나는 답장하지 않았다. 대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골목길과, 그 너머 우뚝 솟은 상생주택의 거대한 벽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저 벽을 완전히 허물기까지는 아마 내 평생이 걸릴지도 모른다. 아니, 내 세대에서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았다. 완벽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오만한 꿈은 버렸다. 나는 그저 다음 세대가 살아갈 이 도시에, 증오와 단절이 아닌 연결과 공존의 벽돌 한 장을 조용히 쌓아 올리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실패한 영웅이 된 내가, 이 도시를 사랑하는 유일한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