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 움 Part6

by sarihana

2부. 재가 된 맹세, 다시 피는 불씨

6장. 무너지는 밤, 깨어나는 의지


그날 밤의 공기는 유독 무겁고 축축했다. 인력 부족으로 3교대는 무너진 지 오래였고, 16시간 연속 근무의 끝에서 모두의 신경은 끊어지기 직전의 낡은 거문고 줄처럼 위태로웠다. 복도를 오가는 발소리에는 생기가 없었고, 오직 기계음만이 죽지 않은 심장처럼 병동을 울리고 있었다.


새벽 3시. 수현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잠시 자리를 비웠다. 핼쑥한 얼굴에 그림자가 짙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괜찮아?"라고 물었다. 그녀는 그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하지만 자리를 뜨기 전, 그녀는 내 손을 아주 잠깐 잡았다 놓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희진아, 미안해…" 그리고는 아주 잠깐 나를 돌아보았다. 그 눈빛에는 내가 읽을 수 없는 수만 가지 감정이 담겨 있었다. 미안함, 원망,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을 포기한 자의 평온함. 나는 평생 그 눈빛을 잊지 못할 것이다.


처음 10분은 그저 피곤해서 쉬고 있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30분이 지나자 불안감이 심장을 옥죄었다. 나는 그녀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꺼져있다는 차가운 기계음만 돌아왔다. 탕비실과 화장실을 몇 번이고 서성였지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동료에게 "혹시 수현이 못 봤어요?"라고 물었지만, 지친 그녀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인계 시간이 다가오자, 수간호사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수현을 찾았다. 그때, 스테이션의 전화벨이 찢어질 듯 울렸다. 수간호사가 굳은 얼굴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병동의 모든 소음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심박 측정기의 단조로운 기계음만이 유독 귀에 거슬렸다.


"…박수현 선생, 병원 뒤편 주차장에서 발견됐답니다."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지독한 이명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눈앞의 형광등 불빛이 길게 늘어지고, 복도 바닥이 발밑에서 기울어지는 듯했다. 누군가는 작게 비명을 질렀고, 누군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차갑게 식어가는 복도 바닥에, 우리의 맹세가, 함께 꿨던 꿈이 산산조각 나 흩어지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병동은 유령선처럼 고요했다. 모두가 서로의 눈을 피했고, 수현의 이름은 금기어가 되었다. 오후가 되자, 병원 관리팀 주재로 긴급 회의가 소집되었다. 하지만 그 자리는 추모가 아닌 책임 회피를 위한 심판정이었다. 원무과장은 냉랭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고 박수현 간호사의 불행한 개인적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합니다. 병원 기록에 따르면, 고인은 입사 전부터 우울증 진료 기록이 있었고, 최근 개인적인 문제로 힘들어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병원의 시스템과는 무관한,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로 결론 내리는 바입니다."


내 안에서 울음이 마르는 소리가 들렸다. 눈물이 증발하고, 그 자리에 차가운 얼음 같은 것이 들어찼다. 저들은 지금 내 친구의 존재를 지우고 있었다. 그녀의 꿈, 그녀의 웃음, 그녀의 고통, 그 모든 것을 '개인적인 문제'라는 편리한 단어 하나로 쓰레기통에 처넣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책임 회피가 아니었다. 명백한 살인이었다. 그들은 수현의 몸을 한 번 죽였고, 이제는 그녀의 존재마저 두 번 죽이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절대로 그렇게 두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끊어졌다. 저들은 내 친구의 꿈과 웃음, 고통으로 가득했던 모든 시간을 '개인적인 문제'라는 편리한 단어 하나로 지워버리고 있었다. 이것은 은폐가 아니었다. 존재의 말살이었다. 죄책감과 슬픔을 넘어선 뜨거운 분노가 온몸을 휘감았다.


"개인적인 문제라고요?"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든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절규했다.


"매일 밤 16시간씩 일하며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게 개인적인 문제입니까? 약물 계산을 하다 손이 떨리고, 환자 앞에서 실수를 할까 봐 잠 못 드는 게 개인적인 문제입니까? 사람이 죽어 나가도 인력 충원 대신 버티라고 말하는 게, 그게 어떻게 개인적인 문제입니까!"


내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회의실을 맴돌았다. 동료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내 시선을 피했다. 수간호사는 나를 마치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내 뒤의 벽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 거대한 침묵의 카르텔 속에서 나는 완벽히 혼자였다.


회의가 끝나고, 나는 수현의 빈 사물함을 정리해야만 했다. 문을 열자, 희미하게 남아있는 그녀의 체취와 함께 기억들이 쏟아져 나왔다. 더 이상 주인을 찾지 못할 낡은 운동화. 첫 월급을 받아 함께 쇼핑하며 "이거 신고 돈 많이 벌어서 효도하자"고 웃던 날이 떠올랐다. 반쯤 먹다 남은 비타민제. "너부터 챙겨 먹으라"며 억지로 내 입에 넣어주던 수현의 잔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리고 간호사 선서식 날, 희망에 가득 찬 얼굴로 함께 찍은 빛바랜 사진 한 장. 그 아래, 작은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수현의 익숙한 글씨체였다.


'희진아, 우리 함께 끝까지 버티자.'


그 짧은 메모, 부서진 약속의 잔해를 보는 순간, 나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사물함에 기댄 채, 어린아이처럼 목 놓아 울었다. 미안해, 수현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끝까지 함께 버텨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얼마나 울었을까. 눈물이 마른 자리에 차갑고 단단한 무언가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흐느낌이 잦아들고, 호흡이 안정되었다. 나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더 이상 도망치지도 않을 것이다. 이대로 주저앉는다면, 수현의 죽음은 그저 '개인적인 문제'로 잊힐 것이다. 이 지옥은 조금도 변하지 않을 것이고, 제2, 제3의 수현은 계속해서 나올 것이다.


나는 텅 빈 사물함에서 수현의 메모를 떼어내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그녀의 마지막 온기이자, 나의 첫 번째 무기였다.


'그래, 수현아. 너는 혼자 갔지만, 나는 여기 남을게. 도망치지 않을게.'


나는 결심했다. 이 지옥을 바꾸지 않으면, 수현의 죽음은 영원히 반복된다. 나의 싸움은 바로 이 무너진 밤 위에서,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keyword
이전 06화태  움 Part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