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령이었다.
최종 보고서 발표를 위한 공식 기자회견장.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소리 없는 폭풍처럼 터지는 가운데, 나는 위원들과 함께 단상에 앉았다.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살갗에 스몄고, 눈앞의 마호가니 테이블은 내 얼굴을 괴물처럼 일그러뜨려 비추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었다. 귓가에는 병원의 소독약 냄새와 환자들의 희미한 신음 대신, 무미건조한 셔터 소리와 속삭임만이 가득했다.
장관과 위원장의 상투적인 연설이 이어졌다. 그들의 입에서는 '상생', '미래', '역사적인 합의' 같은 공허한 단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눈꺼풀 뒤로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공포에 질려 떨던 수현의 손, "엄마는 나보다 수현 이모가 더 소중했어?"라고 묻던 아들의 원망 어린 눈빛, 그리고 "함께 해달라"며 내 손을 잡던 이름 모를 간호사들의 절박한 얼굴까지. 내 앞에는 위원회와 합의한 '준비된 연설문'이 놓여 있었고, 품속에는 빛바랜 '수현의 사진'이 있었다. 타협인가, 신념인가. 내 모든 삶이 이 선택을 위해 달려온 것만 같았다.
마침내 내게 마이크가 주어졌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준비된 연설문을, 내게 씌워진 족쇄를 벗어던지듯 조용히 옆으로 밀어냈다. 떨리는 손으로 품속의 낡은 사진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이 사진은,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가 된 제 친구, 고 박수현 간호사입니다."
회견장은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지루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기자들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기 시작했다. 나는 사진을 든 손을 잠시 내려다본 뒤, 다시 고개를 들었다. 목소리는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나의 조용한 목소리는, 이 공간의 모든 위선을 가르는 날카로운 유리 조각 같았다.
"방금 전, 위원장님께서 '타협의 미덕'을 말씀하셨습니다. 저 역시 그 말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결코 타협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한 인간의 존엄은, 한 생명의 무게는, 결코 그 어떤 논의나 숫자로도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내 말이 이어지는 동안, 위원장의 온화했던 미소가 굳어지는 것이 보였다. 병원 협회 임원들은 당황한 채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이 보고서에는 수많은 숫자와 현란한 분석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제 친구의 눈물은 담겨 있지 않습니다. 이 보고서는 더 나은 내일을 약속하지만, 오늘 밤에도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며 병동에서 쓰러져 갈 이름 없는 간호사들의 절망은 담겨 있지 않습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단상에 앉은 위원들을, 그리고 카메라 너머로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을 세상을 향해 다시 한 번 말했다. 객석 한가운데, 나를 불신과 경멸의 눈으로 보던 강유미의 눈이 충격으로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진정한 변화는 화려한 보고서가 아니라, 이름 없는 간호사 한 명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이 보고서에는 그 눈물이 없습니다. 하여, 저는 이 거짓된 합의에 서명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기자석에서 폭발적인 질문들이 쏟아졌다. "이희진 대표님! 합의가 결렬된 것입니까!" "사퇴하시는 겁니까!" 수많은 목소리와 플래시가 나를 향했지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뒤로한 채 회견장을 걸어 나갔다. 그것은 도망이 아닌, 내 진실의 세계로 돌아가는 행진이었다. 웅성거리는 기자들 사이로, 강유미의 놀란 얼굴이 보였다. 그녀의 눈에는 원망이 아닌, 뜨거운 무언가가 고여 있었다. 출입문 근처, 벽에 기대어 서 있던 박진우 선생이 나를 보고는, 누구도 모르게 아주 희미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한번 끄덕여 주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TV 화면에는 주인을 잃은 나의 '빈 의자'만이 오랫동안 클로즈업되고 있었다. 잠시 후, 당황한 앵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현장은 지금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이희진 대표의 폭탄선언으로… 오늘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어쩌면 저 빈 의자인 것 같습니다."
그 빈 의자는 나의 침묵이자, 이 나라가 들었던 가장 시끄러운 외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