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선변호사 입니다 (2편) - Part17

악마의 기억

by sarihana

제17장: 법정이라는 무대


(서술자: 박수진 변호사)


이현우의 재판이 시작되었다. 나는 피고인석에 앉아 있는 이현우를 변호했지만, 내 시선은 법정의 가장 깊은 어둠, 방청석 어딘가에 숨어 있을 '붉은 장미'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최진혁 검사는 '붉은 장미'가 완벽하게 설계한 디지털 증거들을 제시하며 이현우를 몰아붙였다. 화면 가득 뜬 코드와 해킹 기록은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나는 그 증거들의 허점을 파고들며 이현우를 변호했지만, 나의 진짜 목적은 이현우의 무죄를 입증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목적은, 이현우의 재판을 빌려 '붉은 장미'에게, 그리고 그 그림자 속에 숨어 있을 '정원사'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나는 변론 중간중간, 보이지 않는 관객을 향해 말을 던졌다. 내 목소리는 변호사의 논리를 넘어, 한 예술 비평가의 날카로운 칼날처럼 법정의 공기를 갈랐다.


"검찰이 제시한 증거들은 범인이 '정원사'를 깊이 동경하고, 그의 철학을 어설프게 모방하고 있음을 보여줄 뿐입니다. 하지만 진짜 예술가는 모방에 그치지 않습니다. 자신만의 언어로 '진화'하기 마련이죠. 이 사건은, 스승을 뛰어넘고 싶은 제자의 서툰 반항처럼 보이지 않으십니까?"


방청석의 공기가 미세하게 술렁이는 것을 느꼈다. 내 도발은 성공했다. 나는 계속해서 그들의 관계를 파고들었다. '스승과 제자', '진화와 모방', '치자꽃과 붉은 장미'. 나는 법정에서 사건이 아닌, 그들의 예술을 비평하고 있었다. 나는 나의 언어가 '붉은 장미'의 자존심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고, 그로 하여금 감춰왔던 본질을 드러내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이 법정은 이제 단순한 재판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원사'의 유령과 그의 제자, 그리고 그들에게 맞서는 내가 펼치는 거대한 예술 대결의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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