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기억
나는 매일 밤 '정원사'의 '망상 기록'을 다시 읽었다. 그의 문체, 단어 선택, 광기 어린 철학. 그리고 '붉은 장미'가 남긴 흔적들과 그의 방식을 비교했다. 스승과 제자. 너무나 닮아있으면서도, 결정적으로 달랐다. 정원사가 차가운 관조라면, 붉은 장미는 뜨거운 분노였다.
하지만 그들의 연결고리, '서신'의 실체는 여전히 안개 속이었다. 정원사는 대체 어디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제자를 조종하는 것일까. 나는 권도윤 변호사님이 남긴 유품들을 다시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가 정원사 재판 당시 사용했던 모든 자료들. 그러다 그의 수첩 구석에 적힌 의미를 알 수 없는 메모를 발견했다. 'K.M.S. 개인 유품. 미확인 열쇠. 시립도서관 사물함 C-13.' 권 변호사님이 수사 과정에서 확보했지만, 중요하지 않다 생각하고 잊어버린 흔적이었다.
나는 최진혁 검사를 설득했다. "어쩌면 거기에 정원사의 흔적이 남아있을지도 몰라요. 붉은 장미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것들요."
그날 밤, 우리는 먼지 쌓인 시립도서관 사물함의 문을 열었다. 안에는 낡은 타자기 한 대와, 노트 한 권이 들어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노트를 펼쳤다. 첫 장에는 얼음처럼 냉정하고 이지적인 필체로 쓰인 글이 있었다.
나의 제자에게. 너의 탄생을 환영한다. 너의 정원은 나의 정원과 달라야만 한다... - 정원사
나는 다음 장을 넘겼다. 분노에 찬 듯 날카롭고 격정적인 필체가 눈에 들어왔다.
스승님. 세상은 저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저 역시 스승님처럼, 저의 철학을 증명할 무대가 필요합니다... - 붉은 장미
페이지는 두 사람의 필체로 주고받는 편지로 가득했다. 스승과 제자의 대화. 하지만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모든 조각이 맞춰졌다. 권도윤 변호사님과 함께 필적 감정을 공부했던 기억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 두 필체는... 다른 사람이 쓴 것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왼손과 오른손으로, 혹은 극도의 감정 변화 속에서 써 내려간 필체였다.
"이럴 수가..." 최진혁 검사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스승도, 제자도 없었어. 처음부터... 혼자였던 거야."
'붉은 장미'는 모방범이 아니었다. '정원사'의 제자도 아니었다. 그는 '정원사' 김민석, 그 자체였다. 그의 내면이 만들어낸 또 다른 악마. 이 모든 서신은, 한 정신이 분열하여 자기 자신과 나눈 끔찍하고도 외로운 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