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정원
그리고… 마지막 이름. 그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숨을 멈췄다. 서류 위를 활보하던 눈동자가 한곳에 얼어붙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는 기록을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다. 하지만 그 이름은, 마치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처럼 모든 '오염된 사건'의 최종 결재란에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오정환 검사.
나의 직속 후배이자, 검찰 내에서 가장 날카로운 칼로 불리던 에이스. 내가 아끼고, 때로는 나의 후계자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남자였다.
순간, 10년 전 법정의 차가운 풍경이 섬광처럼 뇌리를 스쳤다.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며 법정을 나서는 우리를 향해 비웃던 아동 성범죄자의 얼굴. 그리고 며칠 뒤, 절망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피해 아동 어머니의 장례식장. 재판이 끝나고 망연자실해 있던 앳된 검사 오정환과, 분노를 삭이지 못해 벽을 치던 신입 형사 한강철, 그리고 부검실에서 조용히 눈물을 삼키던 이수현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설마, 그때였나. 우리 모두의 방패에, 시스템에 대한 믿음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이. 나는 그들의 절망을 그저 젊은 날의 치기로 여기고 외면했다. 그 깊은 상처가 곪아 터져 이런 끔찍한 괴물을 만들어낼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형사, 부검의, 그리고 검사. 세 사람은 완벽한 삼각형을 이루며, 법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방패 뒤에 숨어 있었다. 그들은 시스템 그 자체였다. 그들은 시스템에 배신당한 그날 이후, 스스로 시스템이 되어 세상을 심판하기로 맹세했던 것이다.
우리는 마침내 적의 얼굴을 보았다. 하지만 그 얼굴은, 바로 내 곁에서 나를 향해 존경의 눈빛을 보내던 동료의 얼굴이었다. 불과 며칠 전,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선배님 덕분에 또 하나의 잡초가 뽑혔습니다"라며 웃던 그의 순수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 모든 것이 연기였다는 사실에, 역겨움과 함께 깊은 슬픔이 밀려왔다.
"이젠… 어떡하실 건가요?"
내 침묵을 깨고 박수진이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적의 실체는,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가까웠다.
나는 화이트보드에 적힌 세 개의 이름을 바라보았다. 분노와 배신감으로 뜨거웠던 머리가 차갑게 식어 내렸다.
"무대를 만들어야지." 내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들을 위한 무대를. 그들의 뒤틀린 정의가 얼마나 위험하고 공허한 것인지, 그들 스스로가 증명하게 만들 무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