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뷔페 (확장판) - Part5

삶을 다운로드하는 시대

by sarihana

제5장: 비타 렌타 (Vita Lenta)


칩을 이식하지 않는 소수의 사람들은 "비타 렌타(느린 삶)"라 불리며 구시대의 유물처럼 취급당했다. 그들은 사회 시스템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버그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 내 오랜 친구 라이언도 그중 하나였다. 칩 이식 수술 날짜를 받아놓고, 나는 마지막으로 그를 만나야겠다는 알 수 없는 충동에 휩싸여 그의 아파트로 향했다.


그의 좁은 아파트는 마치 시간이 멈춘 섬 같았다. 문을 열자마자 훅 끼쳐오는 진한 원두커피 향과 먼지 쌓인 책 냄새, 그리고 과열된 기계의 열기가 뒤섞여 있었다. 벽에는 손으로 그린 게임 캐릭터 스케치와 복잡한 세계관 설정 메모가 빼곡히 붙어 있었고, 책상 위에는 낡은 컴퓨터와 빈 커피 컵, 납땜 인두 같은 구시대의 도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나는 그 혼돈 속에서 묘한 안정감을, 동시에 숨 막히는 비효율을 느꼈다.


라이언은 며칠째 씻지도 못한 듯한 초췌한 얼굴로 모니터에 매달려 있었다. 화면 속 게임 캐릭터는 자꾸만 엉뚱한 벽을 뚫고 미끄러져 떨어졌다. 그의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춤추듯 혼란스럽게 움직였다.


"이봐, 이게 대체 몇 달째야?" 나는 그를 한심하다는 듯, 또 한편으로는 안타깝다는 듯이 바라봤다. "너도 알잖아. 칩만 있으면 '코딩 전문가' 프로그램을 다운받아서 10분 만에 해결할 버그야. 왜 이렇게 미련하게 고생해?"


그는 내 말에 대답 대신 희미하게 웃으며, 다시 코드 몇 줄을 수정했다. 그러자 캐릭터가 마침내 벽을 뚫지 않고 멈춰 섰다. "됐어!" 라이언이 짧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기지개를 켜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커피 한잔할래? 진짜 커피."


그는 대답을 듣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삐걱거리는 찬장에서 원두가 담긴 병을 꺼냈다. 투박한 핸드밀에 원두를 넣고 손잡이를 돌리자, '드르륵- 드르륵-' 하는 거칠고 요란한 소음이 고요한 방을 채웠다. 나는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익숙했던 무소음 고효율의 세계에서는 들을 수 없는, 불필요한 소리였다. 그는 필터에 원두 가루를 담고, 주전자로 천천히 물을 부었다. 물줄기가 원두를 적시자 방 안에 진한 향이 퍼졌다. 내 스마트 기기가 그 향의 성분을 분석하며 [아라비카 70%, 로부스타 30%. 최적의 로스팅 온도에서 3도 벗어남] 이라는 정보를 시야 한쪽에 조용히 띄웠다.


그가 내민 머그잔은 살짝 이가 나가 있었다. 커피는… 이상했다. 배달 드론이 가져다주는, 완벽하게 균형 잡힌 맛과는 거리가 멀었다. 처음에는 혀를 찌르는 쓴맛이, 그 뒤에는 낯선 신맛이 느껴졌다.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복잡하고 거친 맛의 끝에서 희미한 온기가 느껴졌다.


나는 이가 나간 머그잔을 든 채 다시 물었다. "그래서, 왜 이렇게 미련하게 고생하는 거냐고."


내 질문에 라이언은 마침내 나를 마주 보았다. 그는 책상 한쪽에 놓인 낡은 사진 액자를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 사진 속에는 그와 똑 닮은, 하지만 더 환하게 웃고 있는 한 여자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다.


"내 누나야. 재능 있는 바이올리니스트였지. 완벽하진 않았어. 가끔 음이탈도 내고, 무대에서 긴장도 많이 했지. 하지만 그녀의 연주엔... 뭐랄까,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어. 그녀만의 색깔이었지."


그의 목소리가 잠시 잠겼다. 누나의 ‘사라진 색깔’이라는 말에, 내 머릿속에 아주 오래전의 기억이 섬광처럼 스쳤다. 대학 시절, 처음으로 코딩의 재미에 빠져 밤새워 만들었던 서툰 게임. 엉망인 코드였지만, 내 캐릭터가 처음으로 화면 위를 움직였을 때 느꼈던 그 순수한 희열. 하지만 교수님은 내 코드를 보고 말했다. "열정은 좋지만 비효율적이군. 이럴 땐 표준 알고리즘을 쓰는 게 맞아." 그 후로 나는 나만의 코드를 짜는 대신, 가장 효율적인 알고리즘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때, 시야 한구석에서 시스템 알림이 희미하게 빛났다.


[시스템 제안: 공감을 표현하십시오. 최적 문장: "정말 안타까운 이야기네."]


"그러다 칩을 이식받았어. '완벽한 연주자' 프로그램을." 라이언의 목소리가 나를 현실로 끌어당겼다. "그 후로 누나의 연주는 기술적으로 흠잡을 데가 없어졌지. 하지만 그게 다였어. 그녀만의 색깔, 그 미세한 떨림이 사라졌어. 결국 누나는 연주가 재미없다며 바이올린을 그만뒀네. 지금은... 그냥 텅 빈 눈으로 완벽하게 조율된 행복감만 느끼며 살아가. 난 그게 죽음보다 끔찍하다고 생각해."


나는 시스템이 제안한 완벽한 문장 대신, 어색한 침묵을 택했다. 그의 슬픔 앞에서, 계산된 위로는 너무나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는 다시 나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지만, 이내 확고한 빛이 서렸다.


"왜냐하면... 이건 적어도 내가 겪은 실패잖아. 이 버그, 내가 만들었어. 수백 번 실패하고, 밤새 머리를 쥐어뜯었지. 그리고 마침내 내 손으로 해결했어. 다운로드한 지식으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거야. 이 과정 전체가 내 이야기, 내 게임의 일부가 되는 거라고."


나는 그의 삶을 경멸했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가진 불완전함의 온기가 부럽기도 했다. 잊고 있던 내 안의 작은 불씨가, 그의 이야기 속에서 희미하게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 혼란스러운 감정을 애써 감추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너처럼 살 자신은 없네."


그 말을 남기고 나는 그의 아파트를 나섰다. 문이 닫히는 순간, 따뜻하고 혼란스러운 아날로그의 세계와 차갑고 질서정연한 디지털의 세계가 완벽히 분리되었다. 나는 시스템이 약속한 완벽한 성공을 향해, 내 안의 작은 불씨를 애써 외면하며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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