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다운로드하는 시대
칩 이식 수술을 하루 앞두고, 나는 마지막으로 부모님을 찾아갔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익숙한 동네에 들어서자, 창밖의 풍경이 느리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수십 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래된 벚나무 가로수와 페인트가 벗겨진 낡은 놀이터. 모든 것이 느리고, 변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혹은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듯한 풍경이었다. 이 완벽하지 않은 풍경이 언젠가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 될 줄은 그땐 알지 못했다.
집 앞에 차를 세우자 어머니가 마당에서 허브 화분에 물을 주다 말고 나를 향해 손을 흔드셨다. 나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는 얼굴에 세월의 주름이 깊게 패여 있었다. 나는 그녀의 미소가 낯설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그리워서 가슴 한쪽이 아릿해져 왔다. 칩이 지배하는 세상의 매끄럽고 계산된 표정들만 보다가,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어머니의 주름진 미소를 마주하니 마치 다른 시대의 유물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부모님은 평생 한 가지 직업, 아버지는 목수, 어머니는 제빵사로 살아왔다. 이 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비효율적'이고 '구시대적'인 삶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손은 늘 정직한 땀과 노력의 흔적으로 거칠었고, 그 손으로 만든 가구와 빵에는 느리고 정직한 요리법으로 빚어낸 따스함이 배어 있었다. 아버지가 만든 서툰 모양의 의자는 내 몸에 꼭 맞았고, 어머니가 만든 투박한 빵은 그 어떤 고급 베이커리의 빵보다 깊은 맛이 났다.
저녁 식탁에 마주 앉아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밝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엄마, 아빠. 저... 내일 칩 이식 수술해요."
내 말에 어머니는 들고 있던 수저를 멈췄다. 쨍그랑, 하고 수저가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어머니는 불안한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봤다. 그들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실망, 슬픔, 그리고 내가 감히 이해할 수 없는 깊은 걱정. 나는 그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내 머릿속에는 오직 뷔페에 차려진 무한한 가능성, 완벽한 성공, 그리고 실패 없는 미래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걱정은 내게 낡고 불필요한 감정처럼 느껴졌다.
"이거 하면 이제 뭐든 될 수 있어요. 의사도, 변호사도, 뭐든요. 방황도 끝이고, 더는 불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나는 부모님을 안심시키려는 듯, 혹은 나 자신을 설득하려는 듯 말했다. 아버지는 묵묵히 다가와 내 어깨를 토닥였다. 나무껍질처럼 거칠지만 따뜻한 손이었다. "네가 어떤 삶을 살든 괜찮아. 네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됐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왠지 모르게 슬픔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되든, 우리 아들이라는 것만 잊지 마라."
어머니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그렇게 기계에 의지하지 않아도, 너는 이미 충분히 똑똑하고 훌륭한 아이야. 실패 좀 하면 어때서... 그게 다 널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건데..."
나는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복잡한 감정들을 애써 외면했다. 내게는 그저 이 모든 불안과 망설임이 사라지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부모님의 사랑과 걱정은 고마웠지만, 그것은 곧 사라질 구시대의 유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날 밤, 따뜻한 집밥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마음은 이미 내일 아침의 차가운 수술실과 그 너머의 화려한 '인생 뷔페'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내가 잃게 될 마지막 온기, 그 불완전함 속에 담긴 진짜 사랑의 무게를 알지 못한 채. 창밖의 낡은 놀이터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