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뷔페 (확장판) - Part11

삶을 다운로드하는 시대

by sarihana

제11장: 끝없는 갈아타기


그 후 몇 주간, 나는 숙제를 해치우듯, 혹은 굶주린 사람처럼 게걸스럽게 경험 프로그램을 갈아치웠다. '완벽한 아들' 프로그램이 남긴 찝찝한 공허함을 지우기 위해, 나는 곧바로 '천재 변호사'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했다. 뇌리에 법전 수만 페이지가 순식간에 각인되었고, 혀는 얼음처럼 차갑고 날카로운 논리로 무장되었다. 법정에서 논리적으로 상대를 압도하고, 배심원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사로잡는 경험은 짜릿했다. 승소 판결이 내려지는 순간, 프로그램은 내게 승리의 희열을 주입했다. 하지만 법정을 나오는 순간, 그 감정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내가 싸워서 얻어낸 승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잘 쓰인 대본을 읽은 배우에 불과했다.

공허함은 더 깊은 자극을 원했다. 다음은 '베테랑 비행사' 프로그램이었다. 다운로드가 완료되자마자, 나는 보잉 747기의 조종석에 앉아 있었다. 수백 개의 복잡한 계기판이 한눈에 들어왔고, 관제탑과의 교신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짙은 먹구름을 뚫고 성층권으로 솟구쳐 오를 때, 창밖으로 펼쳐진 푸른 지구의 장관은 황홀했다. 하지만 착륙 후 시뮬레이션에서 로그아웃하자, 그 거대했던 세계는 한순간에 사라지고 나는 다시 좁고 어두운 자취방의 현실로 추락했다. 황홀했던 비행의 감각 뒤에 찾아온 공허함은 이전보다 더 깊고 어두웠다.

'유명 록스타', '전설적인 셰프', '퓰리처상 수상 기자'... 화려한 경험의 퍼레이드는 계속되었지만, 모든 것은 홀로그램처럼 허망하게 느껴졌다. 땀과 눈물의 무게가 사라진 성공은 그저 공허한 데이터 조각일 뿐이었다. 나는 더 이상 어떤 실패도, 좌절도 겪지 않았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계산되고 실행되었다. 칩은 내게 최고의 결과를 주었지만, 그 과정에서 느껴야 할 노력과 성장의 흔적을 모두 지워버렸다.


수많은 삶을 경험할수록, 역설적으로 '나'라는 존재는 점점 희미해져 갔다. 변호사의 날카로운 언변, 비행사의 냉철한 판단력, 음악가의 섬세한 감각이 모두 내 것이었지만, 그 어느 것도 진짜 나를 말해주지 못했다. 내 원래의 기억, 서툴렀던 대학 시절의 추억, 부모님과의 사소한 다툼 같은 '나'를 구성하던 진짜 기억들은 다운로드된 화려한 가짜 기억들 아래로 깊숙이 묻혀버렸다. 나는 내 몸을 거쳐 가는 무수한 페르소나들 속에서 길을 잃었다.


나는 누구인가? 그 질문만이 안개 속에서 유일하게 선명해졌다.


밤늦게 자취방으로 돌아와 욕실의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에는 완전히 낯선 얼굴이 있었다. 그 얼굴은 내가 칩으로 살아왔던 모든 삶의 흔적을 담고 있었다. 변호사의 오만한 미소, 비행사의 무표정한 눈빛, 그리고 예술가의 공허한 시선이 기괴하게 뒤섞여 있었다. 내가 아는 내 얼굴이 아니었다. 나는 거울 속의 낯선 존재를 향해 물었다. "넌 누구야?" 거울 속의 그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수십 개의 삶이 뒤섞인 공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수많은 삶을 살았지만, 정작 나의 삶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나를 잃고, 텅 빈 껍데기만 남은 유령이 되어 있었다. 이 화려한 뷔페에서 나는 폭식을 거듭했지만, 결국 내 영혼은 굶어 죽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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