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밸브
며칠 후, 유진은 앤드루스 공군기지의 축축하고 차가운 활주로에서 이륙하는 C-17 글로브마스터 수송기에 몸을 싣고 있었다. 거대한 동체가 지면을 박차고 오르는 순간의 육중한 진동이 그의 온몸으로 전해졌다. 기체 내부는 최소한의 비상등만이 켜져 있어 모든 것이 희미한 주황빛과 짙은 그림자 속에 잠겨 있었다. 전투용 좌석의 차가운 금속과 캔버스 천의 감촉, 희미하게 코를 찌르는 항공유 냄새, 그리고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네 개의 엔진이 내지르는 압도적인 소음. 그곳은 인간적인 온기가 완벽히 거세된, 오직 임무만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그의 주위에는 미국뿐만 아니라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각국에서 긴급히 차출된 10여 명의 최고 전문가들이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들은 인류 지성의 최전선에 선 엘리트들이었지만, 지금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자부심이 아니었다. 미지의 재앙,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거대한 힘 앞에 선 한낱 인간으로서의 원초적인 긴장감과 희미한 공포가 그들의 표정을 조각하고 있었다.
아무도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다. 삭막한 정적 속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것은 누군가가 신경질적으로 넘기는 서류의 바스락거림과,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나는 노트북 화면 위를 절박하게 오가는 키보드 소리뿐이었다. 유진은 작은 창문에 이마를 기댔다. 아래로는 끝을 알 수 없는 태평양의 어둠이 망망대해처럼 펼쳐져 있었다. 검은 바다는 마치 거대한 무의식처럼, 하늘의 별빛과 문명의 불빛, 그 빛나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 심연과도 같은 어둠을 응시하던 유진은 기묘하고도 섬뜩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자신은 지금 2011년의 일본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 비행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필사적인 여행이었다. 창밖의 칠흑 같은 어둠 너머, 25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1986년 4월의 어느 절망적인 밤, 그의 아버지가 올랐을 그 이름 모를 수송기의 경로를 정확히 밟아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 차가운 금속 의자에 앉아 무슨 생각을 했을까. 폭발하는 원자로의 불길을 향해 날아가면서, 집에서 잠들어 있을 아내와 어린 아들의 얼굴을 떠올렸을까. 아니면 조국이 부여한 숭고한 임무의 무게에 짓눌려 모든 사적인 감정을 지워버렸을까. 그가 느꼈을 사무치는 공포와 강철 같은 책임감,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덮어버린 채 평생을 따라다닌 침묵의 시작.
유진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육중한 엔진 소리가 어느새 아버지의 마른 기침 소리로 변해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이제 곧 그 깊고 어두웠던 침묵의 근원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 거대한 수송기는 단순한 비행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들의 운명을 싣고 아버지의 가장 깊은 고통 속으로 날아가는, 잔인하고도 거대한 타임머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