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kushima Tape 1편 - Part5

마지막 밸브

by sarihana

2부: 과거의 그림자

5장. 체르노빌로 향하는 길


1986년 4월의 마지막 밤, 유진의 아버지 표트르의 삶은 한 통의 전화로 송두리째 바뀌었다. 그는 소비에트 연방이 자랑하는 촉망받는 핵물리학자였지만, 연구실을 벗어난 그의 세상은 지극히 평범했다. 갓 세 돌이 지난 아들 유진의 맑은 웃음소리가 세상의 전부였고, 아내와 함께 저녁 식탁에 앉는 것이 하루 중 가장 큰 행복인 보통의 가장이었다. 그날 밤도 그는 고단했지만 평온한 하루의 끝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때, 집 안의 모든 정적을 칼날처럼 가르는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수화기를 들었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낮고 권위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질문이나 요청이 아니었다. 의심의 여지 없는 명령이었다.


"표트르 동무, 국가가 동무를 필요로 하오. 우크라이나의 발전소에 작은 화재가 발생했소. 동무의 전문 지식이 시급히 필요하니, 내일 아침 6시까지 중앙역으로 집결하시오."


'작은 화재'. 그들은 그렇게 말했다. 전화가 끊긴 후, 어둠 속에서 아내의 불안에 찬 눈빛이 느껴졌다. "여보, 무슨 일이에요?" 그녀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표트르는 아내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애써 태연한 척 말했다. "별일 아니야. 발전소에 작은 문제가 생겼나 봐. 금방 해결하고 돌아올게." 그는 이것이 조국을 위한 당연한 의무라고, 위대한 소비에트 연방의 시민으로서 당과 국가가 부를 때 응답하는 것이 자신의 신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심장 한구석에서 불길한 예감이 차갑게 피어오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는 잠든 어린 유진의 방으로 가, 고른 숨을 내쉬는 아들의 이마에 아주 오랫동안 입을 맞추었다. 며칠이면 돌아올 것이라는, 스스로도 믿지 못할 약속을 남긴 채 그는 새벽의 어둠 속으로 나섰다.


중앙역에는 이미 그와 비슷한 남자들이 안개처럼 모여 있었다. 모두가 국가의 부름을 받고 잠든 가족을 뒤로한 채 달려온 이들이었다. 탄광의 검댕을 채 지우지 못한 광부, 낡은 군복 차림의 예비역 군인, 작업복 차림의 기술자, 그리고 그처럼 굳은 표정의 과학자들까지. 그들의 얼굴에는 국가에 봉사한다는 사명감과 함께, 미지의 목적지에 대한 불안감이 기묘하게 뒤섞여 있었다.


덜컹거리는 낡은 군용 열차에 몸을 싣자, 객차 안은 이내 담배 연기와 보드카 냄새로 자욱해졌다. 그들은 서투른 농담을 주고받고 독한 보드카를 나눠 마시며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필사적으로 떨쳐내려 애썼다.


하지만 기차가 남쪽으로 향할수록, 차창 밖 풍경은 눈에 띄게 변해갔다. 검문소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도로의 모든 민간 차량은 사라진 채 군용 트럭 행렬만이 끝없이 이어졌다. 객차를 채웠던 억지스러운 활기는 서서히 잦아들었다. 목적지에 가까워졌을 때, 창가에 앉아 있던 젊은 군인 하나가 창백한 얼굴로 소리쳤다. "저길 봐!"


모두의 시선이 그의 손가락 끝을 따라 한 곳으로 향했다. 수평선 너머, 하늘의 한 부분이 마치 악마의 오로라처럼 기이한 무지갯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자연의 빛이 아니었다. 불길하고, 섬뜩하며, 지독하게 아름다운 인공의 빛이었다. 그 순간 표트르는 깨달았다. 이것은 '작은 화재'가 아니었다. 자신들이 향하는 곳은 단순한 사고 현장이 아니라, 인류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재앙의 심장부라는 것을.


객차 안의 모든 웃음소리가 거짓말처럼 멎었다. 덜컹거리는 기차 바퀴 소리만이, 그들을 태우고 지옥으로 향하는 운명의 수레 소리처럼 유난히 크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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