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밸브
그들이 도착한 체르노빌은 지옥의 다른 이름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혀 전체가 마비되는 듯한 강렬한 쇠 맛과 공기가 타들어 가는 듯한 오존 냄새가 후각과 미각을 동시에 공격했다. 눈에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죽음의 입자들이 안개처럼 내려앉아 온몸을 감쌌다. 사방에서 미친 듯이 울부짖는 가이거 계수기의 날카로운 경고음은 이곳이 더 이상 인간의 땅이 아님을 알리는 장송곡과도 같았다.
표트르와 그의 동료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액화 작업인(Liquidator)’, 즉 ‘청소부’였다. 폭발한 4호기 원자로의 지붕 위, 지옥의 아가리 바로 그 위에 흩어진 고농도의 방사성 흑연 조각들을 치우는 것. 당국이 투입했던 서방제 로봇들은 극심한 방사능에 전자회로가 녹아내려 고철 덩어리가 된 지 오래였다. 결국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바이오 로봇’, 즉 인간이었다.
그들은 군인들이 나눠준, 있으나 마나 한 급조된 납 앞치마를 두르고 조잡한 방독면을 썼다. 허용된 작업 시간은 단 90초. 그 안에 삽으로 흑연 조각을 퍼내 지붕 아래로 던져야 했다. 90초. 그것은 한 인간이 평생 동안 감당해야 할 방사선 허용치를 넘어서는 시간이었다.
정치 장교는 지붕으로 향하는 계단 앞에서 그들의 어깨를 일일이 두드리며 연설했다. "동무들의 영웅적인 희생은 위대한 조국과 인민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오!" 그의 목소리는 우렁찼지만, 그들의 귓가에는 멀고 공허하게만 들렸다.
마침내 지붕 위에 첫발을 내디딘 순간, 표트르는 숨을 멈췄다. 발밑에서는 아직도 꺼지지 않은 원자로의 열기가 지면을 녹일 듯이 뿜어져 나왔고, 수억 개의 보이지 않는 총알이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꿰뚫는 듯한 물리적인 공격이 느껴졌다. 시간의 개념은 무의미했다. 1초가 1년처럼 느껴지는 극한의 공간. 옆에서 작업하던 젊은 광부는 삽을 놓친 채 비명을 질렀고, 또 다른 이는 아무 말 없이 기계처럼 삽질만 반복했다.
지붕 위에는 영웅이 없었다. 그저 보이지 않는 적 앞에서 필사적으로 생존하려 몸부림치는 인간들, 강요된 희생의 제물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90초의 사투가 끝나고 비틀거리며 돌아왔을 때, 현실의 지옥이 다시 시작되었다. 많은 이들이 그 자리에서 코피를 쏟아냈고, 격렬하게 구토를 했다. 어떤 이들은 방사선에 직접 노출된 피부에 기이한 ‘핵 선탠’ 자국을 얻었다. 그들은 자신의 몸이 안에서부터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망가져 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 사실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침묵은 공포를 이기기 위한 유일한 무기이자, 서로를 향한 마지막 예의였다. 그들은 그저 말없이 서로의 등을 두드려주거나, 담배를 건넬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