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조각의 무게
폭풍 같은 밤이 지나간 후, 혜진은 깊은 무력감에 빠졌다. 아이들과의 골은 더 깊어졌고, 그녀는 누구에게도 손을 내밀 수 없었다. 마치 투명한 유리벽 안에 갇힌 것처럼, 세상의 모든 소음과 온기가 차단된 채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다.
계속 혼자 삭이는 것은 병이 될 것 같아, 혜진은 큰 용기를 내 오랜 친구들에게 연락했다. 결혼 생활 내내 가깝게 지냈던 친구들이었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 마주 앉았지만, 친구들의 평온한 일상은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들렸다. 친구들은 좋은 의도로 그녀를 위로했다.
“혜진아, 힘내. 다 지나갈 거야. 너도 이제 훨훨 날아야지.”
한 친구는 공감한답시고 자신의 남편 흉을 보기 시작했다. “우리 남편은 어제 또 술 마시고 들어와서… 남편들 다 똑같아.”
악의 없는 그 말들이 비수처럼 혜진의 가슴에 박혔다. ‘너희는 모르는구나. 나는 단순히 남편과 싸운 게 아니야. 내 세상이 무너진 거라고.’ 혜진은 겉으로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들 사이에 놓인 유리벽을 느꼈다. 그 만남이 끝난 후, 혜진은 이전보다 더 깊은 고독감에 휩싸였다. 어설픈 위로는 때로 침묵보다 더 잔인했다.
그 후 혜진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사회의 시선이었다. 동창회에 나갔다가 한 남자 동기가 술에 취해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렸다. “혜진아, 힘들지? 내가 위로해 줄까?” 그의 능글맞은 시선은 그녀를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중하기보다, 그저 쉬운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 같아 깊은 모욕감을 안겨주었다.
이러한 불편한 시선과 무례한 질문을 피하기 위해, 혜진은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패를 만들었다. 늘 밝은 색의 옷을 좋아했지만, 이혼 후에는 무채색의 헐렁한 옷을 즐겨 입었다. 화장도 최소한으로 줄였고, 외출할 때면 습관적으로 이어폰을 꼈다. 내면적으로는 '당당함'이라는 가면을 썼다. '괜찮아요, 저 잘 지내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가사조사를 받는 날, 혜진의 고통은 정점에 달했다. 아이들은 낯선 상담실에서 부모의 이혼에 대해 이야기해야 했다. 대기실에 앉아 있던 혜진은 문틈으로 들려오는 아이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엄마랑 살고 싶어요. 하지만… 아빠도 보고 싶어요." 아이의 대답 끝에는 울음이 섞여 있었다. 자신이 지켜주지 못한 아이들의 순수함이 법정의 차가운 절차에 의해 무참히 해부당하는 것 같아 가슴이 미어졌다. 미안함과 죄책감에 고개를 들 수 없었고, 그녀는 자신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죄를 짓고 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