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kushima Tape 1편 - Part14

마지막 밸브

by sarihana

14장. 비극의 데자뷔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은 순식간에 지휘소 전체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주변에서 숨 막히는 소음처럼 들려오던 키보드 소리와 나직한 대화들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수십 명의 엔지니어와 관료들이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마치 연극 무대를 보듯 두 사람을 응시했다. 유진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붉은 경고등을 깜빡이는 모니터의 빛이 어려 있었다.


"그놈의 매뉴얼이 지금 우리를 구해주고 있습니까?" 유진의 목소리는 분노로 떨렸다. "매뉴얼은 이미 일어난 과거의 사고를 바탕으로 쓰는 겁니다. 이건! 이건 인류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재앙이에요! 당신의 그 차가운 완고함이, 그 시스템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결국 25년 전 체르노빌의 비극을 이곳에 그대로 반복하게 만들 겁니다. 그때도 당신 같은 사람들이 '절차'와 '통제'를 외치다가 수십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소. 시스템을 믿다가 모든 걸 잃게 될 거라고요!"


유진의 목소리에는 아버지의 고통과 침묵으로 얼룩진 자신의 유년 시절,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켜봐야만 했던 무력감이 응축되어 실려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적 논쟁이 아니었다. 그의 삶 전체를 건 필사적인 절규였다.


아키라는 그런 유진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혹은 통제 불가능한 변수를 마주한 과학자처럼 차갑게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한심하다는 기색마저 서려 있었다.


"감정적인 태도는 현장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뿐입니다, 박사. 공포는 방사능보다 더 빠르고 치명적으로 전염되죠. 당신처럼 이성을 잃고 소리치는 지휘관을 따를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주어진 이 지옥 같은 상황 속에서 최선의 효율로, 단 하나의 오차도 없이 움직여야 합니다. 그것만이 더 큰 비극을 막는 유일한 길입니다."


"효율성? 방금 전 의료 천막에서 죽어가던 사람들 앞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방사능에 피폭되고 있는 저 바깥의 작업자들 앞에서 효율성을 말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아키라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의 눈은 유진을 지나쳐 다시 모니터의 데이터로 향했다. 마치 유진이라는 '변수'를 자신의 시야에서 제거하려는 듯했다. "한 사람, 혹은 수십 명의 감정적인 희생에 휘둘리다 수백만 명의 목숨을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으니까. 나는 내 방식대로, 데이터를 믿고 절차에 따라 이 재앙을 막을 겁니다. 그것이 나의 임무입니다."


한 명은 시스템의 실패가 낳은 비극을 온몸으로 기억하기에 시스템을 불신했고, 다른 한 명은 시스템만이 이 통제 불능의 혼돈을 잠재울 유일한 수단이라고 굳게 믿었다. 아버지가 남긴 침묵의 의미를 파헤치러 온 아들과, 또 다른 침묵의 벽을 쌓아 재앙을 막으려는 남자. 유진의 눈에는 아키라가 괴물처럼 보였지만, 아키라의 눈에 비친 유진은 그저 재앙 앞에서 이성을 잃고 히스테리를 부리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두 사람의 신념은 결코 만날 수 없는 평행선처럼 첨예하게 대립했다.


아키라가 싸늘하게 등을 돌려 다시 상황판 앞으로 걸어갔다. 그가 나직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리자, 멎었던 지휘소의 시간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유진의 시선을 피하며 다시 자신의 모니터에 코를 박았다. 유진은 거대한 기계의 톱니바퀴들 사이에 홀로 내쳐진 이물질이 된 기분이었다.


지휘소 창밖으로, 비상 발전기의 굉음이 마치 무너져가는 원자로의 마지막 신음처럼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비극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논쟁이 끝나기 훨씬 전부터, 어쩌면 25년 전 체르노빌의 하늘이 검은 재로 뒤덮였던 그 순간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이전 14화The Fukushima Tape 1편 - Part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