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 사회 (확장판) - Part11

마지막 기록자

by sarihana

2025년 11월: 투명 인간들의 도시


아버지의 장례식 이후, 시간은 의미 없는 숫자의 나열처럼 흘러갔다. 초겨울의 비는 유난히 차가웠고, 세상의 모든 색채를 앗아가는 것처럼 잿빛으로 도시를 적셨다. 그 비가 내리던 날, 아내 남동생의 카페가 문을 닫았다. 폐업 정리를 돕기 위해 찾아간 가게는 텅 비어 있었다. 얼마 전까지 손님들의 웃음소리와 커피 향으로 가득했을 공간에는 싸늘한 적막만이 감돌았다. 아내는 말없이 유리창에 붙은 시트지를 떼어냈다. '원두 납품 문의' 스티커, '계절 한정 메뉴' 포스터. 한때는 희망이었을 그것들이 이제는 너덜너덜한 과거의 흔적이 되어 떨어져 나갔다. 그녀는 중고 장터에 헐값으로 내놓을 커피 머신을 젖은 행주로 닦고 또 닦았다. 그 모습은 마치 자식의 몸을 닦아주는 어미 같았다.


그날 저녁, 나는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텅 빈 속을 무언가로 채우지 않으면 나 자신이 소멸해버릴 것 같다는 공포감에 배달 앱을 켰다.


예상 도착 시간을 훌쩍 넘기고, 한 시간이 지나도록 음식은 오지 않았다. 젖은 슬픔은 마르지 않은 채 짜증이라는 이끼를 피워 올렸다. '대체 뭘 하길래 이렇게 늦는 거야.' 불평과 원망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이 도시의 시스템 어딘가가 또 고장 나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마침내 현관문 너머로 희미한 기척이 들렸다. 나는 문을 벌컥 열었다. 비에 흠뻑 젖은 젊은 배달 기사가 김이 서린 안경 너머로 나를 보며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채 스무 살이 넘었을까. 내 아들보다도 어려 보이는 얼굴이었다.


나는 터져 나오려는 짜증 섞인 말을 내뱉기 위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의 흠뻑 젖어 발목까지 색이 변한 낡은 운동화와, 차갑게 식은 음식 봉투를 붙잡고 가늘게 떨리는 손을 보는 순간, 모든 말이 목구멍 안에서 얼어붙었다. 그는 내 눈치를 살피며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오늘 파업 때문에 배차가 밀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 짧은 순간, 시간과 공간이 뒤틀리는 듯한 기시감에 휩싸였다. 나는 그의 지친 얼굴 위로, 25년 후 내가 뉴스를 통해 마주하게 될 그 절망에 찬 '드론 정비 기사' 이준우의 얼굴을 본 것만 같았다.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이 청년과 미래의 그 청년은 다른 사람이지만,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희망을 저당 잡힌 채, 이 거대한 도시의 부품으로 소모되고 있는 젊음의 얼굴.


나는 간신히 그 말을 삼키고, 퉁명스럽게 음식을 받아 들고 문을 닫았다. 그날 밤, 배달 플랫폼 노조 파업 기사 밑에는 수백 개의 악성 댓글이 달려 있었다. '배부른 소리 하네.', '니들 때문에 오늘 저녁 굶을 뻔했다.', '대체재는 널렸어. 하기 싫으면 관둬.'


나는 차갑게 식어버린 음식을 앞에 둔 채, 그 댓글들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깨달았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앱 화면 속 아이콘과 숫자로만 상대를 인식하고, 그 너머의 땀과 피로, 절박함은 결코 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노트북을 켜고 새로운 기록을 시작했다. 제목은 **'투명 인간들의 도시'**였다. 이 도시는 수많은 '투명 인간'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신기루이며, 우리는 그들의 얼굴을 보지 않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대가로 편리함을 유지하고 있다고. 나는 그 청년의 떨리던 손을 떠올리며,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써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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