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기록자
2025년 3월: 보이지 않는 빚
봄이 온다고 했지만, 내게는 계절의 변화를 느낄 여유가 없었다. 헬멧 속 세상은 늘 겨울처럼 차가웠다. 배달 일은 익숙해졌지만, 피로는 솜에 물이 스며들 듯 온몸에 축적되었다. 밤마다 욱신거리는 허리와 손목을 주무르며 잠들었고, 아침에는 빚 독촉에 쫓기는 사람처럼 눈을 떴다.
그날 밤도 늦게까지 일하고 들어왔다. 현관문 앞에서부터 부모님의 말다툼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는 숨을 죽이고, 어둠 속에 서서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애 학원비는 어떡하고. 다음 달 카드값은."
"조금만 기다려봐. 어떻게든 되겠지."
"되긴 뭐가 돼! 당신이 쓰는 그 잘난 기록이 돈이 돼, 밥이 돼? 애는 저렇게 밖에서 고생하는데, 당신은 방에 앉아 세상 걱정만 하고 있잖아!"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돋쳐 있었다. 모든 문장이 내 심장을 찔렀다. ‘애는 저렇게 밖에서 고생하는데.’ 그 모든 게 나 때문인 것 같았다. 스물다섯이나 먹고 부모에게 손을 벌려야 하는 내 존재 자체가 빚이었다. 나는 죄인처럼 조용히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 안에서도 부모님의 싸늘한 목소리는 벽을 뚫고 들어와 내 귀에 박혔다. 나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귀를 막았다.
며칠 뒤, 거실을 지나다 아버지의 노트북 화면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화면 상단에는 **'미래를 위한 추도문'**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추도문. 아버지는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위해 장송곡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현재는 이미 장례식장이었다. 내 청춘, 내 꿈, 내 희망이 매일 죽어 나가고 있었다. 아버지의 그 거대하고 숭고한 걱정이 지독한 위선처럼 느껴졌다. 세상을 걱정하기 전에, 당장 아들의 벼랑 끝에 선 현재부터 걱정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때, 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아빠 월급이 오르는 게 우리 가족한테는 훨씬 더 현실적인 해결책"이라고. 나는 망설임 없이 내뱉었다. 그것은 진심이었다. 아버지의 뜬구름 잡는 이상보다, 당장 내 손에 쥘 수 있는 만 원짜리 한 장이 더 절실했다. 아버지의 상처받은 얼굴을 보았지만, 나는 조금도 미안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지긋지긋한 감정의 고리를 끊어내고 싶었다. 우리는 가족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묶인 채무 관계일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