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기록자
2025년 4월: 분노와 체념 사이
벚꽃이 눈처럼 흩날렸다. 사람들은 봄이 왔다며 들떠 있었지만, 내게는 그저 배달하기 성가신 꽃잎 쓰레기일 뿐이었다. 하루 종일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내게 계절은 의미 없었다. 세상은 아름다웠지만, 그 아름다움은 나와 상관없는 배경처럼 느껴졌다.
어느 주말 오후, 아버지는 "바람이라도 쐬자"며 나를 볕이 잘 드는 카페로 끌고 갔다. 그 자리에는 고모와 처음 보는 아버지의 친구, 현규 아저씨가 있었다. 아버지는 어떻게든 나를 사회와 연결시키고 싶어 하는 듯했다. 나는 기름때 낀 손을 감추며 어색하게 자리에 앉았다.
대화는 요즘 세상 이야기로 흘러갔다. 현규 아저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분노하고 있었다. 부동산, 연금, 정치… 그는 세상 모든 것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기성세대가 다 빨아먹었다"는 그의 절규는 내가 매일 밤 느끼는 감정과 비슷했지만, 이상하게 공허하게 들렸다. 저렇게 소리 지른다고 세상이 1밀리미터라도 바뀌나? 그의 분노는 출구 없는 방에서 울리는 소음처럼 느껴졌다.
그때까지 조용히 커피잔만 만지작거리던 고모가 입을 열었다.
"저는 그냥 이 게임에서 나갈래요."
순간 카페의 모든 소음이 멎는 것 같았다. 고모는 담담했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는 고모의 말에, 나는 처음으로 어른에게서 동질감을 느꼈다. 단순히 아이를 낳고 안 낳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 부서진 세상의 규칙을 따르기를 거부하겠다는 선언이었다.
현규 아저씨는 고모를 "패배주의자"라며 비난했지만, 내 눈에는 고모만이 유일하게 이 게임의 본질을 꿰뚫어 본 현명한 사람으로 보였다. 분노는 시스템에 대한 미련이 남았다는 증거다. 화를 내는 것은 아직 이 게임의 룰 안에서 이기고 싶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진짜 절망한 사람은 화를 내지 않는다. 그냥 조용히 콘센트를 뽑아버릴 뿐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두 어른이 벌이는, 영원히 합의점을 찾지 못할 논쟁을 지켜보았다. 한쪽은 무너지는 집을 향해 소리치며 불을 끄려 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이미 집이 전소될 것을 알고 조용히 탈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미래를 꿈꾸지 않기로 했다. 여자친구와의 결혼도, 내 집 마련도, 번듯한 직장도. 그 모든 것은 이 망가진 게임의 퀘스트일 뿐이다. 나는 그날, 내 아이의 미래를 미리 애도했고, 내 자신의 미래 또한 함께 장사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