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 사회 (확장판) - Part14

마지막 기록자

by sarihana

2025년 2월: 겨울 아스팔트


손가락 끝이 깨질 듯한 추위였다. 방한 장갑을 껴도, 칼바람은 집요하게 헬멧의 작은 틈새와 옷깃을 파고들어 뼈를 시리게 했다. 하루 종일 오토바이 위에서, 나는 도시의 혈관을 떠도는 이름 없는 부품이 되었다. 내 유일한 상사는 스마트폰 화면 속의 AI 배차 시스템이었다. ‘최적 경로’, ‘예상 도착 시간’. 감정도, 표정도 없는 그 상사는 1분 1초도 나를 쉬게 두지 않았다. ‘띵동!’ 하고 울리는 새로운 콜 알림은 나의 심장을 조이는 채찍 소리와 같았다.


늦은 저녁, 강남의 한 치킨집 앞에서 콜을 기다렸다. 나처럼 헬멧을 쓴 다른 라이더 서너 명이 말없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동료가 아니었다. 다음 콜을, 단가가 100원이라도 더 높은 콜을 먼저 잡아야 하는 경쟁자였다. 한 명이 ‘띵동!’ 소리와 함께 급하게 오토바이에 오르면, 남은 우리는 부러움과 조바심이 섞인 눈으로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곳에는 어떤 연대도, 위로도 없었다. 오직 차가운 아스팔트와 각자의 생존만이 존재했다.


한번은 타워팰리스 꼭대기 층에 배달을 갔다. 문이 살짝 열리고, 값비싼 파자마를 입은 남자의 팔만 불쑥 튀어나와 음식을 채갔다. 그는 내 눈을 보지 않았다. 그저 "수고하세요"라는, 감정 없는 한마디를 던지고는 문을 닫아버렸다. 쾅, 하고 닫히는 육중한 현관문 소리가 마치 나라는 존재를 세상과 단절시키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 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냥 음식을 가져다주는, 기능하는 손에 불과했다.


밤늦게 꽁꽁 언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 따뜻한 거실에서 들려오는 TV 뉴스 소리가 나를 이방인으로 만들었다. 그날도 아버지는 심각한 얼굴로 25년 뒤의 연금 고갈을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젖은 양말을 벗었다. 발가락은 감각이 없었고, 하루 종일 벌어들인 돈을 세어보니 고작 몇만 원 남짓이었다. 그 돈으로는 다음 학기 학원비는커녕, 당장의 생존도 위태로웠다.


나는 방문 너머의 아버지를 생각했다. 아버지는 무너지는 국가의 미래를 걱정했지만, 나는 당장 내일 아침 오토바이에 넣을 기름값을 걱정했다. 그 거대한 시차 속에서, 나는 아버지와 영원히 대화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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