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밸브
유진은 사진 액자를 조용히, 원래 있던 자리보다 더 정성스럽게 내려놓았다. 지금까지 아키라는 그에게 시스템 그 자체였다. 감정도, 인간미도 없는, 매뉴얼과 데이터로만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의 가장 핵심적인 부품. 그래서 그를 비난하고 증오하기는 쉬웠다.
하지만 이제 그는 보았다. 그 차갑고 단단한 강철 외피 아래, 한때는 저렇게 세상의 모든 근심을 잊은 듯 환하게 웃으며 가족을 사랑했던 한 남자가 숨어 있다는 것을.
어쩌면 아키라의 그 냉철함은 시스템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정반대일 수 있다. 모든 것이 녹아내리고 무너져 내리는 이 재앙의 한복판에서, 사진 속의 저 행복을, 사랑하는 가족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에 맞서기 위한 필사적인 방어기제. 그는 어쩌면 시스템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 외에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완벽주의는 가족을 잃지 않으려는, 한 아버지의 처절하고 외로운 싸움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침묵으로 가족을 지키려 했듯, 아키라는 절차와 규율로 가족을 지키려 하는 것이다. 방법은 달랐지만, 그 뿌리에는 어쩌면 같은 사랑과 같은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을지 몰랐다.
유진의 마음속에서 아키라를 향했던 뜨거운 분노가 파도에 씻겨나간 모래성처럼 조금씩 녹아내리고, 그 자리에 혼란스럽고 아픈 연민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는 여전히 아키라의 방식에 동의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를 무조건적인 악으로 단정하고 비난할 수만은 없었다. 괴물인 줄 알았던 상대가 사실은 자신과 같은 고통을 다른 방식으로 견디고 있는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것은 유진의 세계를 흔드는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