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kushima Tape 1편 - Part23

마지막 밸브

by sarihana

23장. 강철의 균열


아키라는 지휘소 근처의 텅 빈 창고, 녹슨 철제 선반들 사이에서 십수 년 만에 처음으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지독한 데자뷔처럼, 15년 전의 그날이 바로 어제의 일처럼 떠올랐다.


그는 이제 막 과장으로 승진한, 야심에 찬 젊은 기술자였다. 동해의 한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상적인 정비 작업이 있었다. 그의 팀에는 다나카라는, 경험은 부족하지만 의욕과 열정이 넘치던 신입사원이 있었다. 그는 항상 아키라를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며, "과장님처럼 냉철하고 완벽한 엔지니어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매뉴얼은 2인 1조로 밸브를 점검하라고 명시되어 있었지만, 다나카는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에 혼자서 작업을 시작했다. 아주 사소한 절차 위반이었다.


하지만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소한’ 실수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작은 실수가 고압 증기 밸브의 오작동으로, 그리고 순식간에 1급 냉각수 누출이라는 아찔한 사고로 이어졌다. 다행히 대형 사고는 막았지만, 다나카는 규정보다 훨씬 높은 고농도의 방사선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그는 아키라의 눈앞에서 해고되었다. 아키라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다. 시스템은 그를 '사고 유발자'로 규정했고, 자신은 그 시스템의 관리자였다. 연민을 느끼는 순간, 자신 또한 시스템의 부품으로서 실격이었다. 그리고 몇 년 뒤, 그의 고향 친구를 통해 다나카가 지독한 백혈병으로 고통받다 스물여섯의 나이로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날 이후, 아키라는 변했다. 그는 인간의 감정, 선의, 의욕, 자만심 같은 통제 불가능한 '불확실한 변수'를 증오하게 되었다. 그것들이 다나카를 죽였다고 믿었다. 오직 데이터와 매뉴얼만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 절대적인 진리였다.


하지만 어젯밤, 유진 킴이라는 미국인 과학자의 절규는 그 두꺼운 갑옷의 가장 깊은 곳에 보이지 않는 균열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시스템을 믿다가 모든 걸 잃게 될 거라고.’


그 말이 독처럼, 혹은 15년 전 다나카의 마지막 목소리처럼 그의 심장 안에서 퍼져나가고 있었다. 아키라는 쓰게 타들어 가는 담배 연기 속에서 흔들리는 자신의 손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시스템을 지키지 못해 다나카를 잃었다. 그런데 이제,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또 다른 다나카들을 외면하고 있었다. 이 끔찍한 모순 앞에서 그의 강철 같던 신념이 처음으로 소리 내어 삐걱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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