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밸브
지휘소의 공기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팽팽했다. 밤사이 2호기 원자로 격납 용기의 압력이 폭발 임계점까지 치솟았다. 모든 냉각 시스템은 사실상 무력화되었고, 수십 개의 모니터에서 섬광처럼 터져 나오는 붉은 경고등이 파국이 임박했음을 알리고 있었다. 아키라가 신처럼 고수해왔던 두꺼운 매뉴얼 속의 모든 대응책들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때, 침묵을 지키던 유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격납 용기의 압력을 수동으로 배출해야 합니다. '벤트(Vent)' 작업을 지금 즉시 실시해야 합니다."
그 말에 지휘소는 찬물을 끼얹은 듯 술렁거렸다. '벤트'. 그것은 원자로 내부의 고농도 방사성 증기를 외부로 직접 방출한다는 의미였다. 밸브를 수동으로 열기 위해 투입될 근로자들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말 그대로 '자살 임무'였다.
"말도 안 돼…." 아키라가 본능적으로, 거의 신음처럼 반박했다. "그건 규정 위반이야. 통제 불가능한 오염을 초래하고 희생자를 낼 뿐이오."
"이대로 두면 격납 용기가 폭발해 체르노빌의 10배가 넘는 오염이 발생합니다!" 유진이 스크린에 뜬 붉은 확산 지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렇게 되면 희생자는 수십만, 아니 수백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가족이 사는 곳까지 저 죽음의 재가 뒤덮게 될 거라고요!"
유진은 아키라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맞섰다. "규정이, 당신의 그 매뉴얼이 우리를 죽이게 둘 겁니까? 지금 우리에겐 최악과 차악의 선택지만 남았을 뿐입니다."
유진의 흔들림 없는 논리에, 아키라는 끝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평생을 자신의 신념이자 갑옷으로 삼아왔던 매뉴얼과 시스템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는 난생처음으로 정면에서 마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