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밸브
유진의 말이 아키라의 신념을 뒤흔들던 바로 그 순간, 통신병 한 명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아키라에게 다가와 위성전화를 건넸다.
"도쿄 본부에서 온 긴급 개인 연락입니다, 책임자님."
아키라는 마른침을 삼키고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그의 표정은 처음에는 의아함으로, 이내 불신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완전한 절망으로 시시각각 무너져 내렸다.
"…위독하다고? 단순한 감기가 아니었나?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괜찮다고… 뭐라고? 바이러스성 폐렴? 폐에 물이 차고 있다고? 병실이 없다고? 도쿄 시내 전체에? 그게 무슨 말인가! 내 딸이다!"
아키라는 전화기를 거의 떨어뜨릴 뻔한 채 비틀거렸다. 그는 헬멧을 벗어 던지고 당장이라도 밖으로 뛰쳐나갈 듯 몸을 돌렸다. "나는 가봐야겠다. 도쿄로… 내 딸이…"
하지만 그의 앞을 도쿄 본부와 연결된 화상회의 스크린이 가로막았다. 화면 속 정부 관료의 얼굴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아키라 상. 현장을 이탈하는 것은 허가할 수 없소. 총리 직속의 국가비상사태 명령이 발령되었소. 현재 발전소는 완벽히 봉쇄되었소. 아무도 드나들 수 없소."
"내 딸이! 내 딸 아이가 지금 죽어가고 있단 말이오!" 아키라의 절규가 지휘소를 울렸다.
"국가의 운명이 당신의 어깨에 달려 있소. 사적인 감정은 접어두시오. 그것이 당신의 임...무요."
일방적인 통신이 차갑게 끊겼다. 아키라는 허공에 정지된 관료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가 평생을 바쳐 지키려 했던 시스템, 그 시스템이 가장 잔인한 얼굴로 그의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그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강철 갑옷처럼 단단했던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나며 터져 나왔다. 그는 무릎을 꿇고 아이처럼 오열하며 바닥을 내리쳤다.
"미안하다… 유나야… 아빠가… 미안하다!"
시스템의 가장 완벽한 화신이었던 남자의 처절한 절규가, 원자로의 경고음보다 더 비극적으로 지휘소를 가득 메웠다. 유진은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