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기록자
2025년 10월: 감정 없는 장례식
가을이 깊어졌다. 거리에 나뒹구는 마른 낙엽들이,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내 오토바이 바퀴에 힘없이 바스러졌다. 공기는 차가웠고, 나는 더 이상 배달 콜 수를 세지 않았다. 그냥 생각 없이 달렸다. 머리를 비우지 않으면, 헬멧 속으로 집안의 무거운 침묵이 따라 들어오는 것 같았다.
어느 늦은 밤,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가 쓰러지셨다고 했다. 바이러스 확진. 나는 놀라지 않았다. 지난달, 백신을 거부하던 할아버지의 완고한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병원 복도에서 나는 아버지가 유리창 너머를 보며 오열하는 모습을 보았다. 어머니는 지친 얼굴로 아버지의 등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보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 슬픔은 얇은 막 너머에 있는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나는 할아버지의 앙상한 얼굴 위로, 얼마 전 세상을 등진 아버지의 친구 현규 아저씨를, 그리고 언젠가 저렇게 될지도 모를 내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가짜 뉴스에 속았다고 비통해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할아버지는 속은 게 아니다. 평생을 믿어온 모든 것에게 배신당한 끝에, 스스로 믿고 싶은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그것은 할아버지만의 방식으로 세상에서 '로그아웃'하는 과정이었다.
며칠 뒤,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은 텅 비어 있었다. 바이러스를 두려워한 조문객들은 거의 오지 않았다. 할아버지에게 '진실의 영상'을 보냈다는 작은할아버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향냄새가 머리를 아프게 했다. 나는 검은 넥타이를 맨 채, 영정 사진 속에서 인자하게 웃고 있는 할아버지를 보았다. 저 웃음 뒤에 얼마나 많은 실망과 배신이 있었을까.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이 모든 절차가 무의미한 연극처럼 느껴졌다.
장례식이 끝나고, 고모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아버지 가시는 길 보니… 더 확실해졌어.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네, 고모. 알 것 같아요… 누가 이런 세상에 자기 자식을 데려오고 싶겠어요."
고모는 내 눈을 잠시 바라보더니, 슬프게 웃었다.
나는 그날 밤, 죽음이 특별한 비극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는 어쩌면 가장 논리적인 결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의 죽음은 내게 슬픔 대신, 내가 선택한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차가운 확신만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