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기록자
2025년 9월: 마지막 고집
귀뚜라미 소리가 눅눅한 저녁 공기를 가르던 9월의 어느 날, 가족 식탁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시작은 아버지였다.
"아버지, 내일 보건소 같이 가시죠. 마지막 접종이라는데, 이번엔 꼭 맞으셔야 합니다."
수저를 든 채 허공을 보던 할아버지가 나직이, 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안 맞는다."
아버지는 답답하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또 그 말씀이세요? 유튜브에 나오는 가짜 뉴스 좀 그만 보시라니까요. 과학적으로 증명된 걸 왜 자꾸..."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함께 약간의 원망이 섞여 있었다. 평생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었던 아버지가 음모론의 희생양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는 자식의 안타까움. 나는 그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국그릇만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주름진 옆모습에서 다른 것을 읽고 있었다. 저것은 가짜 뉴스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었다. 평생을 버텨온 한 인간이 세상에 보내는 마지막 불복종 선언이었다.
할아버지는 해방과 전쟁, 가난을 온몸으로 겪어낸 세대였다. '하면 된다', '나라가 잘살아야 우리도 잘산다'는 말을 주문처럼 외우며 새벽부터 밤까지 일했다. 젊음을 바쳐 공장을 돌렸고, 푼돈을 모아 집을 샀으며, 꼬박꼬박 세금을 냈다. 나라가,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이것이 정답'이라고 제시하는 길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온 사람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할아버지의 성실함을 몇 번이고 배신했다. 땀의 대가는 부동산 광풍 앞에 종잇조각이 되었고, 믿었던 은행은 하루아침에 문을 닫았으며, 나라를 구하자며 금을 모았던 손에는 상처뿐인 영광만 남았다. '전문가'들은 위기가 올 때마다 말을 바꿨고, '나라'는 언제나 힘 있는 자들의 편이었다. 할아버지의 깊게 팬 주름 하나하나에는 그 배신의 역사가 기름때처럼 스며들어 있었다.
그런 할아버지에게 백신은 단순한 주사가 아니었다. 또다시 '나라'와 '전문가'들이 나타나 "이것이 정답이니 의심하지 말고 따르라"고 말하는 세상의 거대한 목소리였을 것이다. 평생을 순응하며 살아온 끝에, 이제는 닳아 없어질 것밖에 남지 않은 자신의 몸뚱어리 하나만이라도 온전히 제 뜻대로 하고 싶다는 마지막 저항. 그건 음모론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세상 전체에 대한 불신이었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 "좋은 대학에 가면 인생이 보장된다"는 말을 믿고 죽어라 공부했다. 하지만 내가 마주한 현실은 끝없는 경쟁과 치솟는 집값, 그리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닿을 수 없는 투명한 벽이었다. 나의 노력은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했고, 나의 미래는 내가 책임질 수 없는 사회 구조 속에서 표류했다. 나 또한 세상을 믿지 않았다. 다만 할아버지처럼 거부할 힘이 없었을 뿐, 세상이 정해준 길 위에서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억지로 걸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할아버지를 설득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대화는 서로 다른 차원에서 맴돌았다. 아버지는 '팩트'를 말했고, 할아버지는 '삶'을 말했다.
그 순간, 할아버지의 고집은 어쩌면 내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력감에 길들여진 내 안의 작은 저항이, 할아버지의 굽은 등을 빌려 처음으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 할아버지의 물컵에 물을 채워드렸다. 할아버지는 나를 잠시 돌아보았다. 찰나의 순간, 우리는 서로의 눈빛 속에서 같은 종류의 체념과 마지막 남은 존엄을 발견했다. 할아버지의 고집은, 어쩌면 내 안의 무너진 세상을 향한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