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조각의 무게
다시 붉은빛이 깊어진 가을이 찾아왔다. 혜진과 민우는 나란히 산 정상에 올랐다. 그가 언젠가 약속했던,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지도에 없는 길'이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마다 서로의 손을 잡아주며 오른 그 길 끝에서, 두 사람은 발아래 펼쳐진 눈부신 풍경과 마주 섰다.
민우는 보온병에서 따뜻한 대추차를 꺼내, 혜진이 직접 만든 비뚤어진 찻잔에 따라주었다. 혜진은 찻잔의 온기를 느끼며, 문득 자신의 지나온 모든 길을 생각했다. 거대한 태풍이 모든 것을 무너뜨렸던 폐허, 깨진 조각들을 그러모으던 아픈 손끝. 그 모든 것이 이 작고 불완전한 찻잔의 무늬처럼, 이제는 미워할 수 없는 자신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저 멀리, 아득하게 보이는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선우는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음식을 만들고 있을 것이고, 지훈은 세상의 잊힌 구석에서 또 다른 '틈새의 빛'을 찾아 셔터를 누르고 있을 것이다. 이제 그녀는 아들들을 생각할 때 더 이상 불안하지 않았다. 그들 역시 각자의 굽이길을 용감하게 걷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혜진은 도시를 향해 있던 시선을 돌려, 곁에 있는 민우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민우의 곁에서, 비로소 온전히 자신과 그 두 사람이 함께 걸어갈 저 너머의 새로운 능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시선이, 이제 나란히 곁을 걷는 사람과 함께 앞을 향하고 있었다.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또 다른 굽이길이, 혹은 예상치 못한 비바람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두렵지 않았다. 굽이길은 새로운 풍경을 보여줄 것이고, 비바람은 서로의 손을 더욱 굳게 잡게 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인생의 목적지는 모든 파도가 잠잠해진 평온한 항구가 아니라, 길 위의 모든 풍경과 폭풍우마저 끌어안는 여정 그 자체임을 그녀는 이제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