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조각의 무게
몇 해가 더 흘러, 매미의 마지막 울음소리가 저녁 공기 속에 스며드는 늦여름이었다.
'책과 그림이 있는 집'의 작은 마당, 커다란 살구나무 아래에서 혜진의 생일 파티가 열렸다. 마당 한쪽 그릴에서는 선우가 만든 특제 소스를 바른 고기가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익어갔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귀뚜라미 소리와 부드럽게 섞였다.
어느새 '혜진의 부엌'은 예약을 해야만 갈 수 있는, 작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식당으로 자리 잡았다. 식당의 단골이 된 김칫국 노인도 초대되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과거 선우를 내쫓았던 강 셰프가 예약을 하고 혼자 찾아와, 말없이 선우의 요리를 먹고는 계산서 뒷면에 ‘좋은 요리였다’는 한 줄을 남기고 갔다는 후문이 들려왔다. 오너 셰프가 된 선우 곁에는 아내 다솜이 그의 요리를 도우며 웃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이름이 알려진 지훈이 낡은 필름 카메라로 그 풍경을 담고 있었다. 이제 그의 렌즈는 세상을 향한 따뜻한 애정의 시선이었다. 그의 렌즈는 더 이상 아버지를 향해 있지 않았다. 대신, 비눗방울을 쫓아다니는 어린 조카의 웃음소리, 엄마와 민우 아저씨가 포개 잡은 주름진 손 같은, 평범하지만 더없이 소중한 순간들을 향해 있었다.
가끔, 그의 전시회에 말없이 다녀가는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주말 오후, 지훈은 공원에서 조카의 사진을 찍어주다 멀찍이 벤치에 홀로 앉아있는 아버지를 우연히 발견했다. 모른 척 지나치려는데, 아이가 아장아장 그에게로 걸어갔다. 아버지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작은 생명체를 보고 놀란 얼굴로 굳어 있었다. 아이가 겁도 없이 그의 무릎을 짚고 서서 올려다보자, 아버지는 아주 오랫동안 망설이다, 떨리는 손을 들어 아이의 작은 손을 한번, 아주 조심스럽게 잡아주었다. 아이가 다시 제 엄마 아빠에게 달려간 후에도, 아버지는 한참 동안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언가 소중한 것을 만졌다가 놓쳐버린 사람처럼. 그 순간 아버지의 얼굴에 스쳐 지나간 복잡한 감정을, 지훈은 셔터를 누르는 대신 그저 자신의 눈에, 그리고 마음에 담았다. 어떤 순간은 렌즈가 아니라 가슴에 담아야 한다는 것을 그는 이제 알았다.
테이블 한편에서는, 몇 년 전 그림 앞에서 울고 있던 그 여인이, 이제는 밝고 단단한 얼굴로 찾아와 자신이 직접 가꾼 작은 허브 화분을 혜진에게 선물했다. "대표님 덕분에 저도 제 작은 정원을 다시 가꾸게 됐어요." 그녀의 미소에 혜진은 따뜻하게 화답했다. 치유의 씨앗은 그렇게 세대를 넘어 또 다른 희망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혜진은 민우가 따라주는 차를 마시며 그 모든 풍경을 보석처럼 눈에 담았다. 갤러리 안 책상 위에는 이제 낡은 가족사진 대신, 선우의 결혼식 날 다 함께 찍은 새로운 가족사진이 놓여 있었다. 완벽하게 정면을 보고 웃는 사진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다른 곳을 보고, 또 누군가는 눈을 감기 직전이었지만, 그 모든 불완전함 속에 깨어진 조각들이 서로를 보듬으며 만들어낸 새로운 형태의 사랑이 담겨 있는, 그들이 가장 아끼는 사진이었다.
"어머님, 이 파스타 소스 비법 안 알려주시면 저 오늘 집에 안 가요!" 다솜이 너스레를 떨자, 모두가 한바탕 크게 웃었다.
혜진은 문득 아주 오래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던 그날을 떠올렸다. 깨진 접시의 날카로운 소리, 아이들의 울음, 자신의 절망. 하지만 이제 그 기억은 아프지 않았다. 그녀는 길고 긴 굽잇길을 돌아, 마침내 이곳, 모든 것이 무너졌던 바로 그 자리 위에 새로운 집을 짓고, 이토록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어냈다.
혜진은 곁에 앉은 민우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갤러리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 너머로, 마당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는 새로운 가족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그녀는 미소 지었다. 슬픔의 흔적마저 품어내어 더없이 평온하고 단단해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였다. 깨어지고 흩어졌던 삶의 조각들이 모여, 이전보다 훨씬 더 찬란하고 위대한 예술 작품이 될 수 있음을, 그녀는 자신의 삶 전체로 조용히 증명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