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 사회 (확장판) - Part24

마지막 기록자

by sarihana

2025년 12월: 로그아웃


한 해의 마지막 달이 왔다. 거리에는 구세군의 종소리가 울렸고, 상점들은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내걸었다. 그 억지스러운 희망과 온기가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나는 더 이상 오토바이에 오르지 않았다. 세상과 나를 연결하던 유일한 끈을, 내 손으로 끊어버렸다.


이제 나의 하루는 현실의 밤에 시작되었다. 동이 틀 무렵 잠이 들어, 해가 중천에 떴을 때쯤 일어났다. 최소한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온라인 번역 아르바이트를 했다. 텅 빈 영혼으로 의미 없는 문장들을 기계처럼 옮기는 시간. 그것은 내가 현실에 내는 최소한의 세금이었다. 일이 끝나면, 나는 망설임 없이 가상현실 고글을 썼다.


그곳에서 나는 비로소 살아있었다.


'아르카디아'의 겨울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나는 길드 마스터 '렉스'로서, 북부 설원 지역의 마지막 성채를 공략하는 대규모 레이드를 이끌었다. 수십 명의 길드원들이 내 지휘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우리는 밤새 싸웠고, 마침내 성을 함락시켰다. [렉스 길드가 '겨울바람 요새'를 점령했습니다!] 라는 시스템 메시지가 서버 전체에 울려 퍼졌을 때, 헤드셋 너머로 길드원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의 존경과 감사가, 차가웠던 내 영혼을 데우는 유일한 온기였다. 현실의 57개 탈락 통지서보다, 게임 속 단 한 번의 승리가 더 현실적이었다.


어느 날 저녁, 한창 길드원들과 다음 공성 계획을 짜고 있을 때였다.


"아들, 그래도 미래를 생각해야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잖니."


아버지의 목소리가 고글 밖 현실 세계에서, 마치 다른 차원의 소리처럼 아득하게 들려왔다. 짜증이 났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망가진 세상의 소리가 내 완벽한 세계를 침범했다.


나는 천천히 고글을 벗었다. 현란한 마법의 빛이 사라지고, 어둡고 삭막한 내 방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문 앞에 서 있는, 걱정과 슬픔으로 늙어버린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그 순간, 나는 아버지를 동정했다. 아직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현실이라는 망겜을 포기하지 못한 저 가여운 사람을.


"아버지, 어떤 미래요?"


내 목소리는 나도 놀랄 만큼 차갑고 평온했다.


"갚을 수도 없는 빚을 지고 평생 일하다 연금도 없이 늙어 죽는 미래요? 아니면 일자리를 빼앗은 노인들을 증오하며 가난하게 사는 미래요? 저는 둘 다 싫어요. 아버지 세대가 말하는 '가족의 행복'이요? 이제 그런 건 없어요. 애 낳으면 '민폐'고, 집 사면 '하우스푸어'고, 노력하면 '호구'가 되는 세상이에요. 현실에서는 환영받지도 못하고 모든 걸 혼자 책임져야 하는데, 차라리 아무도 나를 귀찮게 하지 않는 가상현실이 훨씬 더 합리적이지 않아요?"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상처받은 얼굴로 방을 나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이것은 나의 반항이나 분노가 아니었다. 1년간의 체험 끝에 내린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결론이었다.


나는 다시 고글을 꼈다.


'렉스 님, 복귀하셨군요! 다음 레이드 출발할까요?'


길드원의 채팅 메시지가 반짝였다. 나는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고, 망설임 없이 타자를 쳤다.


'그래, 가자.'


현실의 전원을 꺼버리는 것, 그것이 나의 유일한 저항이자 구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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