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밸브
유진은 지독한 약품 냄새와 자신의 심박을 알리는 기계의 희미하고 단조로운 신호음 속에서 눈을 떴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되어 서로를 찌르는 듯한 극심한 고통. 창문조차 없는 완벽한 백색의 병실. 그는, 살아남았다.
격벽 너머로 아키라가 수많은 튜브와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누워 있었다. 그 역시 간신히 목숨만 붙어 있는, 살아있는 유령과 같은 상태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는 이랬다. 그들이 밸브를 잠근 직후, 원자로의 압력 수치가 거짓말처럼 안정되었다. 철수 명령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희망을 걸고 투입된 후발 구조대가 기적적으로 지하 격리실에서 그들을 발견했다고 했다.
며칠 후, 몸을 조금 가눌 수 있게 되자 정장을 입은 정부 관료가 찾아왔다. 그는 두 사람을 '국민적 영웅'이라고 칭송했다.
하지만 그가 내민 공식 발표문 초안의 내용은 미묘하게, 그리고 교활하게 진실과 달랐다. ‘최종 비상 대응 매뉴얼 7-감마 항에 의거, 아키라 타케다 수석 지휘관과 김유진 특임 고문은 영웅적인 최종 격리 절차를 수행하여…’ 그들의 행동은 매뉴얼에 따른 완벽한 조치로 포장되어 있었다. 정부의 비겁한 최종 철수 명령을 정면으로 어긴 사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 뻔했던 시스템의 명백한 한계는 깨끗이 지워져 있었다.
유진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25년 전, 체르노빌에서 벌어졌던 일이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그대로 반복되고 있었다. 국가의 실패와 무능을 덮기 위해, 그들의 진실과 희생 위에 ‘영웅담’이라는 편리하고 아름다운 가면이 씌워지고 있었다. 시스템은 사람을 죽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진실마저 먹어치우는 괴물이었다.
두 사람은 격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떤 말도 오가지 않았지만, 그들의 눈빛은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