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또는 영화를 보고 난 뒤, 깊은 울림이 있을 때 단순하게 '좋았어' ,'최고야', '너가 꼭 봐야돼' 라는 추천으로 끝내기에는 다소 아쉬운 마음이 든다. 내가 받은 느낌을 글로 정리해보고 훗날 다시 꺼내어 보면 그때 그 시절, 그 감정을 따라갈 수 있어서 좋다. 그런데 이러한 작업(과정)도 여유가 있을때야 가능한 일이다. 이 영화를 워낙 인상깊게 봤던 터라 '언젠가는 반드시 리뷰를 남길거야' 라고 다짐했는데 바로 오늘인가 보다. ^^ 사실 한번 더 보고난 뒤, 글을 쓰고 싶었는데 상영관도 20개에 불과했던 이 영화를 다시 보기란 쉽지 않다.
( DVD가 나온다면 당장 구입하고 싶을 정도로 난 이 영화를 애정한다.)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한 장면 한 장면을 소중하게 보았던 그 기억들을 더듬어가며 어렵게 시작한 이 글을 이어나가고자 한다.
# 이 영화는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들의 우정과 관계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모습은 결코 천진난만하지도, 해맑지도, 아름답지만도 않다. 그들을 바라보면서 마음 한 켠이 아려오는 것은 초등학교 4학년의 모습 속에서 과거와 현재 나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딱히 언제부터라고 이야기할 수 없지만, 어릴적 기억이 남아있는 시기부터 어쩌면 치열한 관계 안에서 살아왔기에...
'너'와 '내' 가 우리가 되면서 상처를 주며, 상처를 받으며 또 다시 각자가 되어가는 삶을 끊임없이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영화에는 각기 다른 성격, 가정환경, 결핍을 가진 3명의 여자 아이들이 등장한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된 인물은 선이다. 평범한듯 평범하지 않은 가정 환경 속에서 일찍 철이 든 선이는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착한 딸이자 동생을 잘 돌보는 착한 누나이다.
이토록 착한 선이지만, 집 밖에서는 친구가 없는 외톨이다.
이 영화는 체육시간 피구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마지막까지 선택받지 못하는 선이
이러한 선이에게도 친구가 생긴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던 날 같은 반에 전학을 온 '지아'와 급속도로 친해진다.
외톨이었던 선이는 지아로 인해 삶 속에서 가장 뜨겁고 눈부신 여름을 보낸다. 성격 좋고, 쿨해보이는 '지아'의 부모님은 이혼했고, 부모님의 사랑에 대한 결핍을 가진 아이였다. 서로의 집을 오가며, 자연스레 서로의 상처를 알게되고, 비밀을 공유하며 점점 더 가까워진다. 찬란한 여름 이들이 우정을 나누는 장면은 참 예뻤고 내 어린시절이 생각나기도 해서 웃음이 나기도 했다.
<선이 지아에게 봉숭아물을 들여주는 장면 봉숭아물 들인 손톱은 이 영화의 중요한 상징이기도 하다.>
각자가 가진 결핍은 관계를 친밀하게 엮기도 하지만, 결핍이 상처인 상태로 머물러 있을때는 서로를 아프게 하기도 한다. 내게 없는 것을 상대방이 가지고 있을 때, 생기는 질투와 알 수 없는 분노랄까 이러한 결핍으로 인한 상처는 '너는 나와는 달라'라는 거리감을 만들며, 상대방(선)은 이유로 모른채 지아의 냉정해진 태도에 가슴앓이하곤 한다. (사실 그 시절을 돌아보면 친구가 전부인 시절이 아닌가) 화해한 선과 아가 다시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으련만 그들의 찬란한 시간은 끝이 난다.
우리들에는 선과 지아의 관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보라'라는 또 다른 인물이 있다.
선과 한때는 친했지만, 왕따하기 시작하였고, 선이 사실은 왕따라는 것을 지아에게 알리며 지아와 선의 사이는 멀어지고 말았다. 지아는 보라 무리와 다를 것 없이 '왕따 주제에' 라고 무시하며, 선을 멀리한다. 초등학교 좁은 교실 안에도 존재하는 권력구도가 참 씁쓸하기만 하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을 참지 못하고, 지는 것은 견디지 못하는 소유욕이 강한 보라. 보라는 어떠한 결핍을 가지고 있는 걸까? 지아가 반에서 1등을 하자 보라는 질투했고, 선을 내쳤던 지아는 선처럼 보라에게 내쳐진다. 쿨해보이는 지아에게는 사실 부모님의 부재 이외에도 상처를 안고 있는데, 전학오기 전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다는 것. 왕따의 경험이 있던 지아는 선이로 인해 다시 왕따가 될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서글프게도 우리의 관계는 피해자가 되기도,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마음을 지키고, 내가 결심한 가치대로 살아가고 싶지만 관계 안에 들어와 있을 때 흔들리는 순간이 많다. 마음을 지키고, 나의 말과 행동을 조절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 것을 알기에 선도, 지아도 이해가 된다. 홧김에 지아의 비밀을 폭로한 선도, 자신을 아껴주었던 선을 무시하는 지아도.....그리고 강한 소유욕을 지닌 보라마저도 안쓰럽게 느껴진다. 어쩌면 나의 모습 안에는 선도, 지아도, 보라의 모습도 있기에 그들의 서투른 모습을 감히 비난하기 힘들다.
좋아했던만큼 상처받고, '어떻게 니가 나한테 그럴 수 있지?'라는 감정은 점점 커져서 미움과 분노로 바뀌기도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관계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순간 영화 속 꼬마철학자 선의 동생 윤이 우리에게 말한다.
"그럼 언제 놀아?"
상처받으면 상처받은만큼 돌려주려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의 사고를 가진 우리들을 멈칫하게 한다. 매일 놀면서 얻어맞으면서도 맞받아치지도 않고 똑같은 친구와 놀이하는 윤이 답답해서 선이 화를 내자 윤은 해맑게 웃으면서 친구가 때리고, 내가 때리고, 친구가 때리고, 그러면 언제 노냐고 묻는다.
윤의 이야기를 들은 선도 나처럼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나 보다. 선은 용기를 낸다. 보이지 않은 권력 안에서 정당하지 않은 왕따행위를 당하는 지아를 감싼다. 당한만큼 갚는 것이 아니라, 지아를 향한 용기있는 작은 발걸음이 기특하기만 하다.
<선과 지아는 어떻게 되었을까?>
# 우리에게도 윤처럼 순수하게 상대방을 받아들였던 시간이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관계로 인한 피로감과 상대방이 내 마음같지 않구나라는 것을 경험하며 보이지 않은 벽을 만들곤 한다. 물론 필요하다. 상처를 경험하며 상처가 더 두려워진 우리에게 그정도 방어기제는 있어야 하지 않는가. 그렇지만 매번 적당한 거리를 두며 '너'와 '내'가 진정한 우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우리가 된다는 건 그 사람의 일생이 나에게 오기 때문에 때로는 피곤하고, 부담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와 진정한 관계맺는 것을 포기하지 않길 바란다. 나도 너도 우리도!
나와 다른 네가 우리가 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우리들'
관계에 대해 다시금 진중하게 돌아볼 수 있는 따뜻한 영화를 만든 윤가은 감독님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참 좋은 영화다. ^^